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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민주주의는 차악일 뿐....

남형윤 2022. 6. 17. 17:48

- 두바이 미술 박물관 사진 -
- 87년 민주화 항쟁 사진 -

(전체적인 내용과 문장은 잘다니자 잘다녀님의 블로거에서 퍼왔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쓴 이원복 교수님의 작품인 " 자본주의 공산주의" 라는 만화로 만든 책에서 어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어떤 철학자의 말은 이렇습니다.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공산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자는 바보요, 늙어서도 그대로 마르크스주의자(공산주의자)로 남아있는 자는 더 바보다"
 
그 어떤 철학자가 한 때  "칼 포퍼"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경우해 한 말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냥 많은 분들로 부터 회자되고 인용될 따름 입니다. 정확한 단어의 팩트와 정확한 첫 사용자는 지금도 모릅니다.

 
여하튼 이 명언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었고, 가끔씩 이말을 인용하거나,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그런데,  갑자기 오늘 이 말에대한 생각과 칼 포퍼라는 철학자가 문득 생각이 납니다. 


칼 포퍼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입니다. 나치를 피해 뉴질랜드로 갔다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1945년 제2차세계 대전 때 펴내고, 왕실에서 작위를 받으며 화려하게 영국으로 돌아가서 장수하신(70년대 작고) 분 입니다.

 
일단 인상깊었던 명언은 와전된 것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철학자 칼 포퍼는 크게 2가지로 유명 합니다.

 
하나는, 토마스 쿤 처럼 과학철학자로서 반증주의(falsification)를 내세워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점으로 제시한 점 입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검증을 통해 틀렸다를 증명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는 것이다.
 
천문학은 관측을 통해 반증이 가능하지만, 점성술은 반증이 불가능하므로 천문학은 과학, 점성술은 비과학이라는 것 입니다. 뻔한 소리 같지만 당시 득세하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검증가능한 것이 과학이다"라고 주장한 것의 허점을 찌른 것입니다.  (점성술도 자기는 검증가능하다고 함!)

 
다른 하나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 입니다. 그는 열린 사회를 꿈꾼 비판적 합리주의자라고 전해집니다. 그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지만 두 발은 단단히 현실을 딛고 있다"는 이말로 이상과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서양에 비해 매우 짧다 그를 위해 흘린 피도 서양에 비하면 매우 적다 그래서 그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여느 선진국 못지 않게 강한데 문제는. 이게 합리적인 게 아니라 약간의 종교적인 팬덤에서 나온다는 거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 목숨을 던져서라도 지켜야할 것! 이라고 생각하며, 신성불가침의 무엇이라는 관념이 아주 확고부동한 그런 느낌이다

 
왜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느냐고? 뭔지 모르는 최근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과 너무나 비슷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칼 포퍼는 칼럼에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 칼 포퍼는 자신의 저서에서 플라톤/헤겔/마르크스를 전체주의(나치)의 등장에 융단을 깔아줬다며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역사를 마치 어떤 정해진 단계를 따라 가는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구조의 관점에서.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인류의 정치형태는 왕정, 귀족정, 참주정 등을 거쳐 자본주의 사회로 간 후 결국 공산주의사회로 귀착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가장 최상, 최종의 형태를 가지지 않는 역사의 시기들은 불완전하고, 과정일 뿐이며, 되도록이면 빨리 단축해서 최종단계를 앞당겨야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핵심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불리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를 택한 이유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쓴 방법은 우리의 흔한 추측과는 매우매우매우 달랐다는 거다.


현실적으로,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를 독재정, 전제정에 대한 대안 쯤으로 여겼다. 사실, 그들은 인기있는 리더는 다수결을 통해 독재적인 권력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테네인들이 옳았다. 비록 민주적으로 결정되었더라도 결정들은 때때로 틀릴 수 있었다......(중략)....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민주정은 독재로 인한 폭정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실용적인 원칙을 기반으로 해서 탄생했다. 즉, 민주정은 애초에 그것이 고귀하다거나, 도덕적으로 합당해서라던가 따위의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줄이자면 민주정은 차악이다. 투자로 치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독재정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투자인 중리스크 중리턴인 민주정을 택한 것이지 결코 민주정이 하이리턴을 보장해주어서 만들고 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개념인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정치형태가 민주정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을 사랑할 때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뜨겁기는 쉬울 지언정 영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민주주의는 현재까지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정치형태인 것이 증명되었다. 이 민주주의가 영원하기를 바란다면 무조건적인 숭배, 신성화가 아니라 냉철한 장단점의 파악을 통해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야하지 않을까?

 
(출처 : 이코노미스트 기사의 일부 입니다) (민주주의는 차악일 뿐 : 칼 포퍼) (작성자 : 잘다니자 잘다녀 님 블로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