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小史와 歷史를 정리해 보다

1941년 - 1980년. 한국-세계 주요 뉴스

남형윤 2022. 7. 20. 12:07

 

- 1941년

 북아프리카와 발칸 반도까지 번진 정복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마침내 동유럽 - 러시아 일대와 태평양 전역으로 확대되며 선과 파시즘의 대결로 변한 시점이었다. 지난해 영국에서 크게 데인 나치 독일은 동쪽으로 눈을 돌려 6월 22일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하면서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이자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장이었던 독.소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 국방군은 파죽지세로 진격을 거듭하며 벨라루스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놓고 레닌그라드를 포위해 시민들을 아사 직전까지 몰고 갔으며, 수천 문의 중포로 세바스토폴을 공격했다. 독일군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의 교외에 다다렀으며 그 외에도 대도시든 소도시든 쳐들어가 유대인들을 잡아다 수용소로 보내는 등 각종 전쟁범죄와 학살을 일삼았다. 독일과 소련은 총력전 상태로 돌입하며 어느 한쪽을 완전히 쓰러뜨릴 때까지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10월 도조 히데키가 일본 40대 총리로 선임되면서 대미 결전을 준비한다. 태평앙에서는 그동안 중국을 맛있게 먹어치우던 일본 제국이 동남아시아로 손을 뻗치고, 12월 영국령 홍콩까지 함락한다. 한편, 결국은 미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판단 하에 12월 7일 전격적으로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습하고, 곧이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본격적인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영국에 소수의 전투기 조종사를 보내고, 중국에 소수의 무기를 지원해 주긴 해도 표면적으로 중립을 지켜왔던 미국은 연합국으로 참전하게 된다. 

-  9월 우리나라 수풍댐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단행하였다.

 

- 1942년

유럽  태평양 전선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풍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해.[2] 동부전선에서는 나치 독일이 모스크바를 코앞에서 놓쳤지만 카프카스와 볼가 강까지 도달하는 등 추축국의 최대판도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레닌그라드를 사수하고 스탈린그라드도 지켜내었고, 그리하여 이 해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점점 독일의 우세가 약해지기 시작한다. 태평양에서는 미군이 특공대를 보내 도쿄 한가운데에 깜짝 공습을 가하는 한편 6월 4일 유명한 미드웨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이 해전에서 미국은 일본의 주력 항공모함 4척을모두 격침 시킨다.(아카기, 카가,  히류, 소류) 이 해전을 계기로 일본에게 승기를 잡기 시작하고,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의 주도권을 일본의 네임드 항모 네 척을 함재기를 가지고 치열한 전투 끝에 가라앉혀서 태평양의 제해권을 잡음과 동시에 항모의 시대를 열었다. 이것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주도권은 연합국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한반도에서는 8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가 집권하면서 징병제가 실시되어 무고한 한국 청년 및 소년들이 강제 징집 및 징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고 부녀자 및 처녀나 소녀들도 정신대 및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전락당하는 비통을 겪기도 했던 격랑의 해였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8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일본의 해결거리로 남아있다.

-  2월 일본의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죠세이 탄광에서 해수가 유입되어 조선인 노동자 183명이 희생 되었다. 10월 일본은 조선 어학회 핵심 인사들을 구속하기 시작한다.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 1943년

연합국은 최대의 위기를 이겨내고, 1942년에 이어 전쟁의 주도권을 계속 쥐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는 하르코프를 빼앗은 독일의 근소한 우위에서 쿠르스크 전투로 인해 양편 모두 괴멸적인 피해를 입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우위로 접어들었다.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은 북아프리카를 거의 되찾고 이탈리아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태평양에서는 지난해에 제해권을 잡은 미국이 여러 섬들을 공략하며 반자이 돌격을 펼치는 일본군을 말 그대로 쓸어 버리고 있었다. 반면 조선반도를 통치하던 조선총독부는 전황이 악화되자 해군지원병제와 대학생 지원병 제도까지 마련하는 등 기존의 징병제도 밖에 있던 조선청년들까지 동원하기 시작했다.

추축국 중 가장 먼저 이탈리아 왕국 졸전 끝에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게 되면서 남은 주범국은 나치 독일 일본 제국 두 국가만 남게 되었으며, 이들의 만행과 발악은 2년 후 종전 때까지 계속되었다.

- 7월 조선총독부가 해군특별 지원병 령을 내렸으며, 8월부터는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를 실시한다. 8월에는 폭염이 발생해 서울이 38.2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10월에는 조선인 20대 이상 대학생과 졸업생들에게도 학도 지원병제도를 적용하였다.

 

- 1944년

1942~1943년에 걸친 반격 끝에 마침내 연합군이 전 전선에서 총공세에 돌입했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이 쿠르스크에서 잃은 병력과 장비를 가다듬고 무시무시한 반격에 돌입하자 나치 독일은 자국 영토로 쫓겨 가면서 패배와 후퇴만을 거듭했으나,[2] 폴란드에는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실행 하였다. 이후, 소련도 바르라티온 작전을 실행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기회로 소련군은 독일 중부집단군을 목표로 소련군 역사상 사상 최대의 공세를 펼치게 된다. 독일군의의 서부전선에서 서방연합군은 노르망디 남프랑스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뤘지만 결국 유럽에 안전하게 발을 디딘 후 프랑스를 해방시켰다. 나치 독일은 연합군을 상대로 9월의 마켓 가든 작전이나 12월의 아르덴 대공세 등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하지만 결국 전황을 돌리기 위한 모든 발악은 무위로 끝나 버렸다. 일본 제국은 중국 전선에서는 대륙 깊숙이 치고 들어가나, 태평양에서는 기상천외한 자살 돌격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미군에 의해 연이어 패배를 거듭하면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연합군의 공세는 격화되고, 그렇게 제2차 세계 대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반면 우리 강토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물적/인적 수탈로 암흑 천지가 지속되고 있었다.

- 6월 만해 한용운 스님 입적하다. 7월 고이소 구니아키가 조선 총독에서 물러나다. 8월 조선에서 여운형 주도로 조선건국동맹이 조직 되었다.  8월 여자 정신대 근로령을 발표하고 일제가 합법적으로 조선 소녀들을 강제로 징용할 수 잇게 되었다.

 

- 1945년

1945년 국내 주요뉴스

8.15  광복
8.15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위원장 여운형)
8.24 舞鶴港에서 우키시마호 폭발, 한국인 귀국자 549명 사망

9. 2 미소 양군 한반도 상륙으로 분단 고착화
9.07 미국 극동 사령부, 남한에 군정 선포

10.13 조선 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

11.23 임정요인 김구 주석 외 14명 환국, 신의주 반공학생 의거

12.28 모스크바 3상회의, 5개년 한국신탁통치안 발표
12.30. 송진우 피살

1945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2. 히틀러 자살-무솔리니 처형
  
3.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사망-트루먼 대통령 승계
4.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5. 유엔헌장 조인-유엔 발족
6.독일, 연합국에 항복  
  
7. 포츠담 회담에서 전후처리 합의
8. 일본 항복  
  
9. 베트남 독립
10. 브레튼우즈협정 발효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분기점이 되었던 연도 중 하나로, 드디어 세계는 파시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나치 독일은 전술, 전략적 통제권을 모두 잃고 종이 위에 이상한 무기들을 그리며 헛된 망상만 하다가, 소련군에 의해 수도까지 탈탈 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잠시 동안이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다. 독일이 항복한 후에도 일본 제국은 세 달 동안 가장 강력한 전함을 헛되이 소모하고 자살 공격의 끝판왕까지 투입하며 옥쇄를 부르짖었지만 그나마 사수하고 있던 보르네오를 뺏기고 수도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완전히 불타 버리고 반쯤 본토 취급하던 오키나와, 슘슈 섬, 만주와 한반도 북부까지 연합군이 쳐들어오고 급기야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을 맞고 영국군이 말라야 반도를, 세 번째 핵이 고쿠라를 노리고 있는데도 '백만 명의 미군이 일본에 상륙하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전쟁을 계속하자'는 육군과 '그렇게 하다가 국민이고 국토고 천황이고 남아나는 게 없을 게 뻔하니 토해낼 건 토해내고 그냥 항복하자'는 해군이 아귀다툼을 하다가 마침내 쇼와 덴노가 해군 측의 손을 들어 주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됐다.

이렇게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어 6년간이나 이어진 제2차 세계 대전이 마침내 끝났으며 7,000만 명[2]이 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헛되이 희생당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으며 수많은 유가족들이 남겨졌다. 화려한 번영을 구가하던 유럽과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을 망정 현대 문명이 싹트던 아시아는 이제 잿더미로 변했으며 남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스웨덴[3] 스위스, 포르투갈 제2공화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등만이 전쟁의 화마에서 비껴나가 평화를 유지하였다.

독일 나치 독일 패망 후 연합국의 관리하에 서독 동독으로 분단되는 비극의 역사를 그렸으며 통일이 되기까지는 45년을 긴장과 고난 속에서 기다려야만 하였다.

일본 제국은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세계 대전 패전으로 국가적인 타격과 후유증을 앓게 되었으며 동시에 식민지로 거느렸던 한반도 대만, 자국 영토로 합병했던 쿠릴 열도, 남사할린 등 여러 영토들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일본 본토에는 연합국 주도의 GHQ가 설치되어 전후 일본을 통치한다.

또한 미국은 12년간 미국을 통치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한지 한달만에 갑자기 서거함에 따라 후임인 해리 S. 트루먼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승하여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전후 문제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희망과 내일을 보고 다시 시작했다. 비록 이후에 냉전이 시작되었지만, 적어도 2022년 현재까지는 더 이상 세계대전이 터지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남긴 교훈이었다.

이 교훈을 거울삼아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10월 국제연합(UN)이 창설되었다. 하지만 UN의 탄생과 존재에도 곳곳에서는 내전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그럼에도 통제력, 구속력이 몹시 약했던 이전의 국제연맹보다는 상당히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1945년을 근대 현대의 경계선으로 삼는다. 한국사에서 근대의 시작 기준이 1860년(동학의 발생), 1864년(대원군 집권), 1876년(강화도 조약), 1894년(갑오개혁), 1897년(대한제국 칭제건원) 등으로 모호한 것과 비교하면 현대의 시작 기준은 명확한 편이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이나 기업, 단체, 기관들을 '해방둥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1946년

 1946년 국내 주요뉴스

02.14 군정청, 최고자문기관인 남조선 민주의원 구성, 안재홍 최초의 민정장관 취임
02.15 좌익진영,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

03.05 북한 토지개혁 실시
03.20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막

05.15 정판사위폐사건 진상 발표

06.03 이승만, 남한임시정부 수립과 민족주의통일기관 설치
06.16 국립 서울 종합대학안 발표

10.01 대구 폭동 사건

11.23 남조선노동당 결성(위원장 허헌)

12.12 과도입볍의원 개원(의장 김규식)

1946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ns1946yforch)
 
1. 세계최초 전자계산기 ENIAC 완성  
2. 극동국제군사재판 개정
  
3. 유네스코 발족  
4. 미국 첫 공개 핵실험
  
5. 처칠 영국 수상, '철의 장막' 첫 언급  
6. 필리핀 독립
  
7.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선출  
8. 소련, 종전후에도 이란에서의 철수를 거부
  
9.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 세계적 스타로 부상  
10. 케인즈 사망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년의 연표 중에 전쟁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은 평화로운 해였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통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 소련의 대립이 세계 각지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전후의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을 위한 물밑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여담으로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3명이나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제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동갑내기 대통령이 2명이 된 경우[2]는 있었지만 3명까지나 된 경우는 미국 역사상 최초이며, 클린턴은 미국 최초의 베이비붐 출신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또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으로 재임했었던 노무현 역시 1946년생이었다.[3][4]

우리나라에서는 이 해에 좌우 대립이 격화되어 6.25 전까지 혼란의 연속이었으며,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을 해방둥이,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고 태어난 세대들이라고 하여 해방 이후 세대들이라고 불렀다. 미국 등 서양권에선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 1947년

1947년 국내 주요뉴스

02.03. 국대안 동맹휴학
02.10. 안재홍 최초의 민정장관 취임

03.01 좌우익 3.1절 충돌
03.22. 전평(全評), 남한 전역서 24시간 총파업

04.19 서윤복, 보스턴 마라통대회 우승

05.21.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개막

07.19. 여운형 암살

08.04 중방송국 프락치 사건

11.14. 유엔총회, 한국총선거안 가결

12.02. 한민당 정치부장 장덕수 피살

]1947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트루먼 독트린 발표
2. 마샬플랜 발표

3. 대만 2.28사건 발생
4. 유엔총회, 팔레스타인 분할안 채택

5. 인도-파키스탄 분리독립선언. 인도공화국 수립
6. 1947 사해문서 발견
  
7. GATT 조인
8. 크리스찬 디오르 '뉴룩'(New Look) 발표
  
9. 미국 자동차 왕 헨리 포드 사망
10. CIA 발족

미국 소련의 충돌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세계에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와중에 힘을 잃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에서는 그토록 열망하던 독립과 건국을 향해 나아가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연이어 벌어졌다.

서울 경기도에서 분리독립하고 명칭도 1947년 기준 작년에 경성부(京城府)에서 '서울시'로 바뀌었으며 다음 해에는 최초로 특별자유시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서울 거주자들은 주민등록상 광역단체 기준으로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로 이관되어서 경기도민에서 서울특별시민으로 바뀌게 되었다. 1년 후인 1948년에는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의 수도로 승격되었다.

한편 일본은 이때부터 현대가 시작되었다.

몽양 여운형, 설산 장덕수 등 정치사회 인사가 저격을 당했던 격랑의 해이기도 했으며 한국 UN 한국위원단이 방한하여 한반도 정부수립에 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잦은 이상 저온 현상으로 서울 연평균 기온이 9.6℃로 기상 관측 역대 최하위이다.

 

- 1948년

 1948년 국내 주요뉴스

04.03 제주 4.3사태
04.19. 김구 방북

05.10 제헌국회의원 선거
05.31. 제헌국회 개원(의장 이승만)

07.17. 대한민국 헌법 공포
07.24.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위임

08.15. 대한민국 정부수립

09.09.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09.22 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

10.20. 여순반란사건

 

1948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트랜지스터 발명
2. 이스라엘 독립 선언
  
3. 소련, 베를린 육로 봉쇄
4. 제1차 중동전
  
5. 코민포름, 유고 공산당 제명
6. 간디 피살
  
7. 미주기구헌장(보고타 헌장) 조인
8. 제14회 런던올림픽 개막
  
9. 킨제이보고서 '인간 남성의 성적 행동' 출판
10. LP레코드 첫 공개

마침내 한반도 삼팔선 이남 지역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명백한 한반도의 주권독립국가의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삼팔선 이북에는 북한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부 수립과 동시에 남북분단이라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으며. 73년이 흐른 지금도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5월에는 해방 이후 최초로 선거가 열렸는데 처음에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치르기로 하였지만, 끝내 북한 소련의 반대로 이남 지역에서만 선거투표가 진행되었다.

미군정에서 독립함에 따라 이 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9월 학기를 실시한 해가 되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하계, 동계 올림픽에 모두 출전한 해이다. 대한민국 국적으로는 최초로, 1948년 스위스에서 열린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3명(이종국, 이효창, 최용진)의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에 출전했다. 하계 올림픽에는 1948 런던 올림픽에 7개 종목[2]에 50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2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동시에 이스라엘이 독립정부를 수립하였던 해였는데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고질적이고 앙숙스러운 관계가 발단이 되었다.

이 해부터 우리나라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사라지고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고착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정기에는 조선이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 1949년

 1949년 국내 주요뉴스

01.08.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 발족

04.05. 독직사건으로 임영신 상공장관 사임

05.01. 제1회 전국인구조사 실시 (남한인구 2016만 675명)
05.20.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
05.28. 주한미군 전면철수 발표

06.06. 경찰, 반민특위 습격사건
06.21. 농지개혁법 공포
06.26. 김구 피살

07.05. 지방자치법 공포

12.06. 첫 징병검사 실시

]1949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2.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탄생

3. 동유럽 공산국가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 창설
4. 세계최초의 제트 여객기 첫 비행

5. 소련, 원자폭탄 첫 실험
6. 서독 신헌법 공포
  
7.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 독립
8. 아일랜드공화국, 영국 연방으로부터 독립

9. 세일즈맨의 죽음-남태평양 초연
10. 로마 교황청, 공산주의 불인정 경고

1949년은 중국사에 있어 대격변의 해였다. 먼저 국공내전이 사실상 종결되면서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국민정부는 대만, 하이난 섬 및 중국 대륙의 극히 일부 도서 지역만 겨우 건졌다.[2] 이때부터 양안간의 대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철의 장막이 형성되면서 서구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감이 크게 강화되었다. 지금까지 가시화되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6월 백범 김구가 장교 안두희가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던 해였으며 주한미군은 고문단 등 극히 일부의 병력만 남기고 남한에서 철수하였다. 그리하여 1년 후 끝내 이런 비극으로….

그리고 같은 시기 동남아시아에서는 동남아시아의 영토 및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유일의 내륙국가인 라오스가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했다. 이로써 동남아시아에서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에 이어 서방의 식민지배에서 4번째, 5번째로 독립한 동남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더불어 일본에서는 베이비 붐을 의미하고 있는 단카이 세대로 대격변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1947 - 51년 사이가 최대치였고 이후에는 감소세로 돌아서다가 1974년이 되어서야 단카이 주니어라는 단카이 시즌 2로 이어졌다.

 

- 1950년

 1950년 국내 주요뉴스

03.13. 제1차 내각책임제 개헌안 부결
03.27. 남로당 총책 김삼룡, 이주하 검거

04.06. 농지개혁 실시
04.12. 한국 보스터 마라톤대회 제패

05.30.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

06.14. 여간첩 김수임 사건
06.25. 한국전쟁 발발

09.15. 인천상륙작전

10.25. 중공군, 한국전 참전

1950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중국-소련, 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 조인
2. 트루먼 미국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언

3. 중국, 티베트 침공
4. 미국 매카시 선풍
  
5. 유럽석탄철강공동체계획(슈만 플랜) 발표
6. 미국 제트 전투기, 첫 대서양횡단 성공
  
7. 나치스에 굴복한 벨기에 왕, 국민들의 반대로 퇴위
8. 터키 27년 만에 1당 독재 종식하고 정권교체  
  
9. 애치슨 선언
10. 신장이식수술 세계최초로 성공

이 해는 한국에서 6.25 전쟁이 일어난 해로 유명하다. 그리고 같은 무렵 미국에서는 조지프 매카시 의원이 날뛰면서 이른바 '매카시즘 선풍'이 불었다.

또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서 쓰이는 단위인 BP(Before Present)의 기준 연도이며, 음료수 칠성사이다가 처음으로 시판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 1951년

 1951년 국내 주요뉴스

01.04. 1.4후퇴
01.05. 독립운동가 서재필 발사 별세
01.20. 국회, 중공 침략자규정 결의안 가결

02.11. 저창 양민학살 사건

03.29. 국민방위군사건

05.04. 대학교육 전시 특별 조치령 공포

06.10. 한강철교 복구공사 준공
06.27. 휴전회담 시작

11.02. 전북에 비상계엄령 - 제1차 공비토벌 작전
11.19. 자유당 창당

]1951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대일강화조약·미일안보조약 조인
2. 중국-티베트, '티베트 평화해방의 방법에 관한 협약' 조인  
  
3. 태평양안전보장조약(ANZUS) 조인
4. 제1회 아시안게임  
  
5. 세계최초의 상업컬러TV 방송
6. 라쇼몽(羅生門) 베니스영화제서 대상  
  
7. 영국 총선거, 보수당 승리로 처칠 6년 만에 재집권
8.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해임  
  
9.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둘러싸고 반영감정 고조
10. 이란, 외국석유기업을 국유화

중공군의 전면적 참전으로 6.25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치열한 공방 끝에 양측은 전쟁의 완전 승리를 포기하고 휴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1951년 4월부터 1952년 3월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은[1] 중학교 입시에서 두 과목(국어/산수[2])만 시험보았다. 본래 전 과목을 시험보다가 "어린이들의 수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국어와 산수만 보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이듬해부터 다시 원상복구되었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제정으로 대통령의 3선을 금지했다.

 

- 1952년

1952년 국내 주요뉴스

01.18. 이승만 대통령, 평화선 선포

02.15. 제1차 한일회담

04.25. 제1대 지방의위의원 선거 실시

05.07.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05.23. 부산 정치파동

06.25.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

07.04. 발췌개헌안 통과
07.22. 문화보호법 제정

08.05. 제2대 대통령 선거 - 이승만 대통령 당선

12.02. 아이제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 내한

1952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즉위
2. 세계최초 수소폭탄 실험
  
3. 아이젠하워, 미국 제34대 대통령 당선
4. 헬싱키 올림픽
  
5. 쿠바의 바티스타, 쿠데타
6. 처음 공개된 성전환자

7. 일본 경찰, 황궁앞 광장서 시위하는 데모대에 발포
8. 이집트 군사 쿠데타, 나기브-나세르 실권 장악

9. 케냐독립을 위한 마우마우의 폭동
10.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 부인 사망

6.25 전쟁은 고지전을 중심으로 한 소강 상태에 접어들고 있었고, 포로의 자유 송환을 주장하는 유엔군 측과 강제 송환을 주장하는 공산군 측의 포로 회담 문제로 휴전 협정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군인들만 희생되어 가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세계적으로 냉전은 점점 심각해져만 갔다.

2차 대전 직후부터 연합군에게 점령되어 관리되던 일본은 이 해 4월 28일에 국권을 회복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일본국'으로서 존속하고 있다.

1951년 4월부터 1952년 3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중학교 입시에서 2과목(국어/산수)만 시험보았다. 본래 전 과목을 시험보다가 "어린이들의 수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국어와 산수만 보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이듬해부터 다시 원상복구되었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또 이들은 성인이 되어 전투경찰순경 1기 대원으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 1953년

 1953년 국내 주요뉴스

01.06. 이승만 대통령 일본 - 자유중국 방문
01.09 창경호 침몰 354명 사망
01.30. 부산 국제시장 화재

02.15. 제1차 통화개혁

04.09. 사상계 창간

05.13. 근로기준법 공포

06.08. 포로교환협정 조인

07.27. 휴전협정 조인

10.01.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
10.15. 한일회담에서 구보다 일본대표 망언

1953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티토, 유고 초대 대통령에 선출
2. 스탈린 사망
3. 하마슐드 유엔사무총장 취임
4. 힐러리, 세계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5. 소련, 수소폭탄 보유 공표
6. 소련, 공산당 제1서기에 흐루시초프 선임
7. 로젠버그 부부, 원자폭탄 제조기밀을 소련에 넘긴 간첩혐의로 사형
8. 크릭-왓슨, DNA구조 발견
9. 베리야 前소련 부수상 총살
10. 이란 쿠데타, 팔레비 국왕 집권

1953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열전으로 번진 냉전"이라고도 불리는 6.25 전쟁은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종료되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양측 진영에는 씻을 수 없는 적대감이 생겨났고, 긴장감은 계속 고조되었다. 그리고 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 1954년

1954년 국내 주요뉴스

01.13. 독도에 영토표지 설치

03.11. 정비석 ‘자유부인’ 논쟁
03.27. 이대통령, 한글 간소화 실현을 촉구
03.31. 소득세법 공포

04.26. 제네바 회담 개최

05.13. 불교계 내분, 비구-대처 암투
05.20. 제3대 총선

07.17. 학술원-예술원 개원

11.29. 사사오입 개헌 파동

1954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월맹군, 디엔 비엔 푸 점령
2. 인도차이나 휴전협정 조인
3. 원자폭탄 개발을 지휘한 미국 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청문회 시작

4. 알제리 독립전쟁
5. 세계최초의 핵잠수함 노틸러스 진수
6. 나세르, 이집트 정권장악

7. 일본 자위대 발족
8. 동남아조약기구(SEATO) 창설
9. 미국 학교의 흑인차별 철폐

10.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베트남전에서 지뢰밟고 사망

1954년은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그동안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은 한국전 휴전 이후 세가 꺾였으나, 한국전쟁이 휴전한지 얼마 안 된 때에 베트남은 내전으로 피바다만 남기고 남북으로 허리가 잘리었다.

한편 동쪽으로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사사오입 개헌을 감행하였고, 이로서 초대 대통령은 3회 이상 연임이 가능하게 되어 독재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 1955년

 1955년 국내 주요뉴스

01.01. 외래어표기법 통일안 작성

03.02. 부산역 객차 화재

05.25. 재일(在日) 조총련 결성
05.31.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검거

06.21. 북한 공군장교 이운용, 이인선 야크기 타고 귀순

07.06. 신판 로빈슨 크루소 조병기 귀국

08.08. 증권시장 개장
08.26. 한국, IMF-IBRD 가입

09.14. 대구매일 필화사건
09.18. 민주당 창당

 1955년 조선일보 선정 국제 10대뉴스
 
1. 반둥평화회의
2. 바르샤바조약기구 창설
3. 소련·유고, 베오그라드선언
4. 서독, 할슈타인 원칙 발표
5. 영화배우 제임스 딘 사망  

6. 디즈니랜드 개원
7. 미-영-불-소 4국 정상 제네바 회담
8. 소아마비 예방 백신, 미국 44개주에서 집단접종한 결과 안전하다고 발표
9.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망  
10. 베트남공화국 수립

 

- 1956년

1956년 국내 주요뉴스

01.30. 김창룡 육군 특무대장 피살

05.05.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후보 사망
05.12. 국내 첫 TV방송국(HLKZ) 개국
05.15. 제3대 대통령선거, 이승만 당선
05.20. 써머타임 실시

09.28.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

10.01. 제1회 국군의 날

11.06. 국제시계밀수사건
11.10. 진보당 창당

 1956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헝가리 부다페스트 반정부 봉기
2.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 비판
3.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4. 엘비스 프레슬리 인기
5. 제2차 중동전쟁(이스라엘군, 이집트 침입)

6. 여객선 안드레아 도리아호 침몰
7.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개막
8. 본격적인 원자력발전소 시대 도래  
9. 일본 미나마타만에서 원인불명의 중추신경질환(미나마타병) 발생 첫 보고
10. 모로코와 튀니지 독립

 

- 1957년

1957년 국내 주요뉴스

01.13. 유도회 분규

04.07. 한국신문편집인협회 창립

05.19. 제1회 미수코리아 선발대회
05.25. 장충단 시국강연회 테러난동사건

07.01. 유엔군사령부, 일본서 서울로 이동

08.22. 간첩 김정제 사건

09.01. 가짜 이강석 사건

10.09. 우리말 큰사전 완간

12.05. 서울문리대 필화사건
12.17. 민법 제정

 1957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소련,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 발사
2. 유럽공동체(EEC) 설립
3. 이란 대지진. 3천명 행방불명
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성공
5. 국제원자력기구(IAEA) 발족

6. 막사이사이 필리핀 대통령 비행기사고로 사망
7. 영국 수소폭탄실험 성공  
8. 캐나다 총선거, 22년만에 정권 교체  
9. 리틀 록 백인 고등학교에 군부대 투입
10. 크리스챤 디오르 사망

 

- 1958년

1958년 국내 주요뉴스

01.13. 진보당 사건

02.16. KNA여객기 피랍

05.02. 제4대 총선
05.15. 한강 인도교 개통
05.30. 이창훈, 아시아경기대회 마라톤 우승

07.11. 산업은행 연계자금 부장대부사건

08.08. 뇌염으로 1천 9백명 사망

12.24. 보안법 파동

 1958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프랑스 드골 내각 성립
2.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발사
3. 중국, 인민공사 설립
4. 펠레, 월드컵 스타로 부상
5. 이라크 군사쿠데타
 
6. NASA 발족
7. 요한 23세, 비오 12세로부터 교황직 승계
8.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 동경서 개막
9. 중국군, 금문도 포격
10. 아랍연합공화국 탄생

1958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 6월은 첫날부터 폭염에 준하는 기온을 기록하고, 말기에는 목포 34.4˚C, 전주 35.0˚C, 울산 35.2˚C, 강릉 35.7˚C, 추풍령 36.2˚C, 광주 36.7˚C, 서울 37.2˚C, 대구 38.0˚C[1] 등 당시 기상 관측 지역에서 역대 6월 최고기온 극값을 기록했으며, 이 기록은 2020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2][3][4] 6월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았으나 정작 7~8월은 이상 저온이 찾아와서 가장 높아도 32~35도에 그치는 날씨를 보였으며, 30도를 넘는날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도 8월 중순부터 빠르게 기온이 내려갔다. 그러나 12월에는 평년보다 아주 따뜻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한국의 경우 베이비 붐 세대의 대표인 '58년 개띠'의 그 58년을 말한
 
 
 
 
- 1959년
 
 
 1959년 국내 주요뉴스

01.21. 평화시장 화제
01.27. 소련 프라우다 기자 이동준 귀순

02.04. 경향신문 여적 필화사건

03.10. 제1회 노동절

04.30. 경향신문 폐간

05.03. 한국여자 농구팀 마닐라농구대회 우승

07.17. 부산공설운동장 대참사

09.17. 태풍 사라호 참사
09.26. 희극배우 김희갑 구타사건

12.14. 재일동포 제1차 북송
 
 
 1959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카스트로 쿠바 혁명군, 바티스타 정권 타도
2. 닉슨-흐루시초프, 부엌논쟁
3. 남극조약, 세계 12개국 조인
4. 달라이 라마 인도 망명
5. 중국 국가 주석에 유소기 선출

6. 소련, 루나3호 발사. 달 뒷면 촬영 성공
7. 알래스카-하와이, 미국의 49번째-50번째 주(州)로 편입
8. 미국, 원숭이 우주비행 성공
9. 영국-그리스-터키, 키프로스 독립협정
10. 싱가포르 자치국 독립선언
 
 

 

- 1960년

 1960년 국내 주요뉴스

01.26. 서울역 집단 압사사건

02.15.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 사망

03.15. 3.15 부정선거

04.19. 4.19 혁명
04.28. 이기붕 일가 자살

05.29. 이승만 하와이 망병

06.15. 아이젠하워 미대통령 방한

08.23. 장면 내각 성립

10.11. 4.19 부상학생 국회난입

1960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소련, 영공침범한 미국 정찰기 U2기 격추
2. 프랑스, 사하라서 원폭실험 성공
3. 케네디 미국 대통령 당선
4. 제15차 유엔총회 개막
5. 제17회 로마올림픽 개막

6. FDA 피임약 승인
7. 일본 전학련 국회 난입
8. 미국 민간여객기 뉴욕 상공서 충돌. 132명 사망
9. OPEC 설립
10. 일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방문 취소

이 해에 대한민국에서는 3.15 부정선거 4.19 혁명으로 격동이 몰아쳤던 해였고,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의원내각제(의회제) 양원제[1] 국회를 채택하는 내용으로 개헌을 하면서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이후 5대 총선으로 양원이 구성되고 윤보선 대통령[2], 장면 국무총리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그러나 장면 내각은 그리 튼튼하지 못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이듬해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실각하여 대한민국 제3공화국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4.19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화도 결국 1년 간의 한때에 그치고 만다.

여담으로 1960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태어난 해로 기록되어있다. 1,080,535명으로 100만명대 출생아수의 정점을 찍었으며 2000년대 출생아의 2배 수준. 이들이 환갑이 되어가는 2020년 현재도 약 90만 명 정도가 생존중이다.[3]

위에도 적었듯이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 선거가 두 번 치루어진 해이다. 3.15 부정선거 제4대 대통령 선거가 반년도 안 되는 텀을 두고 치루어졌었는데, 3.15 부정선거는 무효화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무효화 된 적이 없으며 당선자가 사퇴 혹은 사망하여 사실상 없던 일이 된 것이다.

 

- 아프리카에서는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들이 많이 독립하며 이 1960년을 아프리카의 해로 불리게 만들었다. 프랑스 치하에서만 14개국이 독립했다.


이상 17개국이 독립하고, 16개 국이 UN에 같은 해 가입했다.[6]

그 이전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는 원래부터 독립해 있던 남아프리카 연방,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제국 리비아(55년), 모로코, 수단, 튀니지(56년), 가나(57년), 기니(58년)의 9개국에 불과했다.

61년에도 시에라리온, 탕가니카(61년, 후에 잔지바르(63년)와 연합해 탄자니아(64년))가 독립했으며, 이후 63년까지 아프리카에 30여 개국(현재는 53개국)의 국가가 독립하면서 제3세계가 두각을 나타내는 데 공헌했다.

냉전은 다시 열전으로 번질 위기에 처했다. 미국 정찰기 U-2 소련 영공에서 격추된 데 이어, 또 다른 미국 정찰기를 격추하기 위해 소련군 전투기가 출격하는 등 크고 작은 충돌과 긴장이 1년 내내 이어졌다.
 
 
 
- 1961년
 
 
 1961년 국내 주요뉴스

02.27. 중석불 사건

04.21. 황윤석 판사 변사사건
04.29. 충주비료공장 준공

05.16. 5.16군사혁명
05.18. 장면내각 총사퇴

07.01. 장도영 반혁명 사건

11.09. 물가동결 조치
11.11.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미국 방문

12.12. 재향군인회 결성
12.21. 민족일보 사건
 
 
 1961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소련의 유리 가가린,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
2. 케네디-흐루시초프, 비엔나서 정상회담
3. 동독, 베를린장벽 구축
4. 다그 하마슐트 유엔사무총장 비행기추락 사망  
5. 콩고의 루뭄바 살해

6. 미국, 쿠바 침공
7. 소련 핵실험 재개
8. 소련-알바니아 단교
9. 유태인 학살범 아이히만,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 선고
1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식 발족
 
 
1961년도 다사다난한 해였다. 갓 독립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대규모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여기에 열강들이 연루되어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이를 중재하던 함마슐드 UN 사무총장이 사고로 죽고 다시 이 와중에 인도 포르투갈 식민지를 무력 침공하는 등 분쟁의 씨앗이 멈추지 않았다.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무엇보다도 이 해 소련 쿠바 미사일 기지 설치를 합의했다. 제3차 세계대전을 부를 수 있는 초유의 일이 이 해에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4월 입학을 시행했던 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정치사적으로는 하나의 분기점이 된 해이기도 하다. 이 해의 상반기에는 통일 운동, 학생 운동, 노동 운동이 많이 일어났으나 박정희 5.16 군사정변이 일어남으로써 동시에 27년간의 장성 출신의 권위주의 정권이 시작되었다. 또한 한강의 기적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 제2공화국 어린이날 공휴일로 지정했다.

 

- 1962년

1962년 국내 주요뉴스

01.01. 연호, 단기에서 서기로 변경
01.05.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02.10. 국토건설단 창단

03.16. 정치활동정화법 공포
03.22. 윤보선 대통령 하야

05.31. 증권파동

06.10.제2차 통화개혁

09.10. 조두형군 유괴사건

11.12 김종필-오히라 회담

12.17. 헌법개정안 가결

 1962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존 글렌, 미국 최초의 유인궤도 비행
2. 알제리-프랑스 7년만에 정전협정. 알제리 독립
3. 버마 쿠데타로 네윈장군 집권
4. 소련 보스토크 3호-4호 랑데부
5. 미국, 쿠바 해상봉쇄 선언

6. 제2회 바티칸공의회
7. 중국-인도 군사 충돌
8. 일본 열차2중 충돌. 160명사망  
9. 미국, 텔스타 통신위성 발사로 텔레비전 중계 성공
10. 마릴린 먼로 사망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쿠바 미사일 위기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질 뻔 했다는 게 가장 각인에 남았던 해였다. 1945년 8월 9일 이래 처음으로 핵무기의 실전사용이 준비되어, 전략폭격기와 탄도미사일이 대기상태에 돌입했고,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직면했다.

다행히 인류 멸망을 두려워 한 양국은 서로 한 발 양보하여 3차 대전은 터지지 않았다. 또 우리나라에서 단기 대신 서력이 공식 연호로 사용된 첫 해였다. 그리고 이 해에 태어난 사람 중에는 성인이 되어 1981년 경비교도대 1기로 입대하게 된다.

이 해는 현재 쓰이는 대한민국 원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이때까지 제작된 영상이나 사망한 작가들의 작품은 저작권이 만료되었다.[1] 대한민국 저작권이 2013년 개정되었기 때문으로 1963년 작품들의 저작권 만료기간은 2033년이다.

 

- 1963년

 1963년 국내 주요뉴스

01.01 정치활동 금지 해제
01.00 혼분식 장려운동

02.25. 주가폭락으로 증권시장 마비
02.26. 공화당 창당

03.06. 4대 의혹사건 수사

04.19. 아시아영화제에서 김승호-도금봉 남녀주연상 수상

09.18. 콜레라 유행

10.15. 제5대 대통령선거, 박정희 당선

11.25. 영친왕 이은 56년 만에 환국

12.17. 제3공화국 발족

1963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케네디 미국 대통령 피살
2. 마틴 루터 킹 목사, 워싱턴에서 비폭력저항 선언
3. 키프로스 사태 악화
4. 베트남 쿠데타, 고 딘 디엠 피살
5. 미-소 직통전화 가설협정 조인

6. 교황 요한 23세 사망
7. 이탈리아 바이온트댐 산사태로 4천여명 사망
8. 미국 핵잠수함 스레서호 대서양 해상에서 침몰. 129명 실종
9. 케냐, 영국으로부터 독립
10. 세계최초 소련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슈코바, 우주비행에 성공

 

대한민국에서는 제3공화국이 수립되고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고 취임하였다.[1] 이 해 경상남도에 속했던 부산이 국내 최초로 직할시로 승격되어 경남에서 분리독립했다. 아울러 서울의 면적이 대폭 확장되어 오늘날 서울 영역의 골격이 거의 대부분 완성되었다. 풍납토성이 경기도의 문화재에서 서울의 문화재가, 봉은사가 서울의 사찰이 된 것도 이 때다.[2] 식품에서는 국내 최초 인스턴트라면인 삼양라면이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카 퍼레이드중 총격을 당해 암살을 당하면서 린든 B.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미국의 제 3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해외 록씬에서는 앞으로 음악계가 크게 흔들릴 움직임이 포착된다. 전설의 록밴드, 비틀즈가 1957년 결성이래 6년만에 정식 데뷔앨범인 1집 스튜디오 정규앨범 Please Please Me을 발매한 해이다.

 

- 1964년

 1964년 국내 주요뉴스

01.28. 3분폭리사건

04.10. 전국 결핵환자 100만명

05.21. 무장군인 법원난입사건

06.03. 6.3사태와 비상계엄 선포

08,05. 언론윤리위원회법안 통과
08.14. 인혁당 사건

09.11. 국정감사권 부활

10.09. 신금단 부녀 상봉

11.11. ‘통일론’ 필화사건

12.06. 박정희 대통령 서독 방문

 1964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통킹만 사건
2. 흐루시초프 해임, 브레즈네프 취임
3. 제18회 동경올림픽 개막
4. 중국 첫 원폭실험
5. 존슨 대통령, 신공민권법에 서명

6. 존슨, 미국 대통령 당선
7. 비틀즈 미국에 선풍
8. 무하마드 알리 챔피언 등극
9. 파나마 반미폭동에 대한 미국 경찰의 발포로 300여명 사상
10. 페루서 축구경기 중 관중 난동으로 500여명 압사

1964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주도로 대일외교 협상이 차차 진행됐으나, 일반 국민들과 재야세력이 '굴욕 외교'라고 간주해 대규모 시위를 일으켜 박 정권을 궁지로 몰았다. 이에 박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민중들의 대일외교 반대 투쟁을 억압하고자 했다.

이 해 4월은 한반도 내에서 매우 특이한 기온이 나타났다. 서쪽 지역은 초이상 고온으로 서울이 14.1°C를 기록하고 전주는 16.6°C로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강한 이상 고온이 왔으나 강릉은 7.9°C로 상상초월한 매우 강한 이상 저온이 와서 그 두 지역은 1개월 반 정도의 기온 차이가 나타났다.

미국에선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꺾어 당선해 민주당 집권기를 이었고, 마이클 잭슨 잭슨 5로 데뷔하여 대중음악에 첫 발걸음을 뗀 시기이다.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포츠 분야인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는 단독 1위를 하던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시즌 막바지 10연패로 인해 1위 자리도 내주고 월드 시리즈 우승에도 실패했던 1964년의 비극(Phold of 1964)이 있었다.

 

- 1965년

 1965년 국내 주요뉴스

01.28. 제2한강교 개통

04.10. 월남파병동의안 국회 통과

05.21. 중학입학시험 무즙 파동

06.03. 민정 민주 양당, 민중당으로 개칭 통합

08.05. 박정희 대통령 방미
08.14. 합성마약 메사돈 파동

09.11. 한일협정 조인

10.09. 이승만 전대통령, 하와이서 서거

11.11. 서울에 위수령 발동

12.06. 한일 국교 수립

1965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미국, 베트남 북폭 개시
2.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당선
3. 슈바이처 박사 사망
4. 소련-미국, 우주유영에 성공
5. 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휴전선 전역서 교전

6. 윈스턴 처칠 사망  
7. 미국 우주선 제미니 7호-6호, 우주 랑데부 성공
8. 인도네시아 9.30사건 발생
9. 싱가포르 독립
10. 흑인지도자 말콤X 피살

1965년은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에는 이전해에 시작되었던 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이 본격적으로 전투병을 보냄으로서 실시되었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미국 하와이로 망명한 후 사망하였던 해였으며 한국 일본이 해방 및 패전 20년 만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양국간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국제 협력의 해'로 지정했다.

일본에서는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크 잡지, 쇼와 40년(1965년) 남성(昭和40年男 born in 1965)이 존재하며, 2013년부터 발행중. 이것이 인기를 끌자 쇼와 45년(1970년) 여성(昭和45年女 born in 1970), 대상을 10년후로 늦춘 쇼와 50년(1975년) 남성(昭和50年男 born in 1975)이란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 1966년

 1966년 국내 주요뉴스
    
01.28. 철도화물운임 횡령사건
04.10. 한독당 내란음모사건

05.21.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발족

06.03. 박정희 대통령 동남아 순방

08.05. 김기수 프로권투 세계제패
08.14. 한미행정협정 조인

09.11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10.09. 김두한 국회 오물투척사건

11.11. 석가탑 사리함서 목판 인쇄 다라니 경문 발견

12.06. 존슨 미국 대통령 내한

1966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인도 총리에 인디라 간디 선출
2. 여객기 추락사고 빈발
3. 소련-미국, 달착륙에 성공
4. 중국 문화대혁명 시작
5. 미니스커트 열풍

6. 미국 히피문화 정점에
7. 미국 대법원 미란다원칙 판결
8. 월트디즈니 사망  
9. 미국 제미니 8호 발사, 궤도를 돌던 아지나 로케트와 최초 우주도킹 성공
10. 이탈리아 호우로 국토 3분의 1이 침수

1966년은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세계는 혼란이 계속되었지만, 이 해의 가장 큰 사건은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막을 열었다는 것이다. 바로 전 해인 1965년, 1959년에 출판되었던 <해서파관>이 비판을 받았던 것이 시작이었다. 한편으로 일본에서 출산율이 1.58명으로 떨어졌는데 경제구조나 사회구조가 급작스레 변화해서 출산율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고 병오년에 태어난 말띠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한 일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이 해 한국의 출생자들은 과외금지조치 및 TV 가정고교방송을 처음 경험했다. 이들이 중2 때부터 과외가 금지되었고 조계종이 불기를 북방불기에서 남방불기로 바꾼 해이기도 하다.

전국 대부분의 군 단위 지역들의 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이기도 하다.

경제에서는 이 해에 처음으로 1원 주화, 5원 주화, 10원 주화가 발행되었다.

 

- 1967년

1967년 국내 주요뉴스
  
01.28 여객선 한일호 침물
04.10. 해군 56함 피격사건

05.21 신민당 창당

06.03.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가입

08.05. 구로공단 준공
08.14. 제6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당선

09.11. 신라 문무대왕암 발견

10.09. 동백림 사건

11.11. 제1차 한일각료회담

12.06. 청양 구봉광산 광부 양창선 구출

1967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제3차 중동전 '6일전쟁' 발발
2. 미국 디트로이트서 사상 최대 흑인폭동
3. 아시아 5개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 결성
4. 소련 인공위성 비너스4호, 최초로 금성에 착륙
5.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 사살

6. 최초의 심장이식 수술
7. 콘버그-굴리안, DNA 인공합성에 성공
8. 아폴로1호 우주비행사 3명 사망
9.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 사망
10. 미군, 베트남전에서 대량의 고엽제 살포

"Summer of Love". 히피 문화의 중심에 있던 해이며, 특히 사이키델릭 록이 가장 크게 발전한 해였다. 비틀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Magical Mystery Tour,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핑크 플로이드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Are You Experienced, 도어즈 The Doors, Love Forever Changes, 롤링 스톤즈 Between the Buttons, 거기에다가 비치 보이스 Good Vibrations 싱글과 같은 명반들이 폭탄처럼 쏟아져 나왔다. 1971년과 더불어 록 음악 최고의 전성기인데 현재 우리가 아는 대중음악 사운드는 대부분 1967년 결정된 해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페퍼 상사 음반의 영향으로 이 해를 기점으로 클래식 음악의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대중음악의 해가 시작된다. 그정도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해였다.

헐리우드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파격적이었던 보니 앤 클라이드, 졸업 등의 작품이 선보이며 뉴 헐리우드(New Hollywood) 기조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 천국의 문이 망하기 전까지 1970년대 내내 지속되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관광의 해'로 지정했다.

북한은 이 때부터 본격적인 막장으로 치닫았는데, 그나마 존재하던 민주주의적 요소가 완전히 말살된 때가 바로 이 해이고, 또 북한의 언론들이 유례없는 욕설과 막말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1]

일본 성우 쪽에서는 이 해에 태어난 성우들만 해도 모리카와 토시유키, 하야시바라 메구미, 사사키 노조무, 히야마 노부유키, 야지마 아키코, 미츠이시 코토노, 코야스 타케히토, 이시다 아키라, 나카이 카즈야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쟁쟁한 스타 성우들이다. 물론 한국 성우 쪽에서도 이 해에 태어난 성우로는 김승준이 있다.

 

- 1968년

 1968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무장공비도발 (1월11일)
2. 행토예비군창설 (4월1일)
3. 한·미정상회담 (4월17-18일)
4. 서울중학입시폐지 (7월15일)
5. 김종필씨 은퇴 (5월30일)

6. 독과점 폭리규제 (9월9일)
7. 산청버스 참사 (10월30일)
8. 영·호남 가뭄
9. 주민등록증 발급 (11월21일)
10. 교육헌장 선포 (12월5일)

 1968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소련, 체코 침공   
2. 미군, 남베트남 손미村 미라이마을에서 주민 500명 학살  
3. 킹목사 피살
4. 베트콩-월맹군, 구정 공세
5. 제19회 멕시코 올림픽 개막

6. 닉슨 대통령 당선
7. 일본 이타이이타이병 환자, 카드뮴을 배출한 삼정금속광업 고소
8. 62개국, 핵확산금지조약 조인
9. 프랑스 5월혁명
10. 미국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피살

단기 연호 기준으로 44세기가 열린 해이다.

그 유명한 68운동이 발생한 해였다. 베트남 전쟁 구정 공세로 절정에 도달했고, 전 세계의 거리는 프라하의 봄 프랑스 68 혁명으로 들끓어 올랐으며,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과,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여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로버트 F. 케네디 암살된 해였다. 하지만 그 결말은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아이젠하워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역임했던 공화당 대선 후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당선, 샤를 드 골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 당선 등 세상이 다시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의 시대가 되는 것으로 끝났다. 우리나라에서 이 해에 태어난 이들은 대학생 시절 6월 항쟁에 참여하고 8월 전대협 발족 1세대 새내기가 되기도 했다.

국제연합에서는 세계 인권 선언 제정 20주년을 맞이해 이 해를 '세계 인권의 해'로 지정했다.

국내에서는 북한의 대남 도발이 극에 달했던 해이다. 1월에 김신조의 북파 공작원 일당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 목적으로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1] 이틀 뒤 동해에서 미국의 정보함인 푸에블로호를 피랍한 푸에블로호 피랍사건[2], 그리고 그해 10월에 사흘간 무장공비들이 연달아 침투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들이 일어나고 42년 후에도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남 도발이 일어나게 된다.

 

- 1969년

1969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삼선개헌안 파동과 국민투표 실시
2. KAL기 납북
3. 이수근 국외 탈출
4. 삼남(三南)지방 휩쓴 폭우
5. 킹스컵축구와 ABC농구서 한국 우승

6. 천안열차 충돌
7. 김규남 등이 관련된 북한 간첩단 사건
8. 한국산악회 해외 원정 등반대원의 설악산 조난
9. 콜레라 전국오염
10. 주문진 무장공비 침투

1969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중국-소련, 우수리강 다만스키섬에서 무력충돌
2. 아폴로 11호 달 착륙
3. 닉슨 독트린 선언
4. 체코 공산당 제1서기 알렉산더 두브체크 실각, 후임에 후사크
5. 일본 전공투(全共鬪), 야스당강당에서 경찰과 공방전

6. '콩코드' 세계최초로 초음속 비행
7. 리비아에 군사 쿠데타, 카다피 등장
8. 제1회 우드스톡 축제
9. 미국, 베트남 반전시위
10. 호지명 초대 베트남 대통령 사망

이 해는 인류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에 발걸음을 내딛은 해다. 냉전으로 시작된 이른바 우주 경쟁에 따른 결과이지만, 인류의 달 진출 소식은 어쨌든 그해 최고의 이슈였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진 상태였고, 소위 68세대의 부흥에 따른 반전 움직임이 절정을 이룬 해였다. 히피족이 생겨나고,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그러한 모토로 그 해 처음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동안 가장 역동적인 해 중 하나로 1969년이 종종 꼽힌다.

그리고 한국에선 검정고무신의 배경이 되는 해이다. 3선 개헌 파동이 일어나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 의도가 점차 드러난 시기였다.

육상교통 분야에선 대한민국 최초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경부선 부산역 동대구역, 경전선 광주역도 새 역사로 옮겼다.

뉴 야드버즈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레드 제플린이 1집으로 데뷔하면서 음악계에 한 획을 긋는다.

미국에서 1969년은 문화적 코드 중 하나로 인식되는 추세다.[1] 복고? 주 요인은 이 해 미국 세계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해냈고, 당시 세계에서 제일 컸던 여객기인 보잉 747을 개발했으며, 시카고에 세계 2번째 100층 빌딩이자 당시 세계 2위 최고층 빌딩이었던 존 핸콕 센터를 완공했고, 세계 최초의 인터넷을 탄생시키는[2] 등 과학기술 방면에서 엄청나게 발전을 했다는 것.[3] 여기서 비롯된 낙관적 분위기가 시대를 지배했던 데다 비틀즈를 위시로 한 대중문화의 황금기가 유지되며 미국인들의 기억에 강렬히 남게 된 시기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코드가 잘 나타난 문화작품으로는 영화 맨 인 블랙 3이 있다. 그러나 이 해 찰스 맨슨 일당의 폴란스키가 살해사건이 발생하여 큰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 이 사건을 기점으로 히피 문화가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1969년 특유의 낙천적 분위기와 올드스쿨한 문화를 잘 드러낸다.[스포일러] 또, 새서미 스트리트가 첫 전파를 탄 해이기도 하다. 이글스의 대표곡 Hotel California 가사에는, 호텔 급사장에게 와인을 달라고 했더니만 1969년부터 그런 술(spirit)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물론 이 가사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어쨌건 1969년이 정신적(spirit)인 격변기였다는 점을 노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1970년

1970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남영호 대참사
2. 주한 미군 감축 통고
3. 와우아파트 붕괴
4. 요도호 김포공항 착륙
5. 박대통령 8·15 선언

6.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씨 지명
7. 경부고속도로 개통
8. 모산·원주 수학여행 참사
9. 영친왕(英親王) 서거
10. 수출 10억달러 달성

- 새마을운동 시작

1970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21년만에 첫 동독 방문
2. 일본·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
3. 비틀즈 해산
4. 프랑스 전대통령 드골 사망
5. 미군 캄보디아 침공

6. 아랍게릴라, 여객기 4대 잇따라 하이재킹
7. 동파키스탄 대해일로 30만명 사망
8. 반전운동 시위를 벌이던 켄트대 학생들 4명 피살
9. 일본여객기 요도호 납치사건
10. 서독, 폴란드와 국교정상화 조약체결


원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기로 예정되었던 해였지만, 북한의 온갖 위협으로 인하여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태국 방콕에서 대신 개최되었다.[1] 그리고 1986년에 가서야 공식으로 개최하게 된다. 농촌계몽/개발운동인 '새마을 운동'이 전개된 것도 그 해이다.

유닉스 시간의 값을 0으로 두면 1970년 1월 1일이 된다. 이로 인해 2038년 문제 같은 유닉스 시간 문제에 관련되어 많이 언급되는 해. 때문에 사진 파일에 오류가 생기면 사진을 찍은 날짜가 이 날짜로 표기 될 때가 있다.[예시] 나무위키에서도 최초 생성일이 1970년 1월 1일로 되어있는 문서들이 있다. 문서들을 포크해오면서 역사를 잃은 것. 역사를 잊은 문서에게 미래란 없다 또한 나무위키에서 무기한 차단된 상태에서 소명 게시판을 제외한 다른 게시판을 들어갈 경우 차단 만료일이 1970년 1월 1일로 뜬다.

1966년에 1원, 5원, 10원 주화가 발행된 이후, 이어서 100원 주화가 처음 발행되었다.[3]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교육의 해'로 지정했다.

 

- 1971년

 1971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비상사태선포(非常事態宣布)
2. 남북가족(南北家族) 찾기
3. 위수령 발동(衛戍令發動)과 학생제적(學生除籍)
4. 물가파동(物價波動)
5. 양대선거(兩大選擧)

6. 대연각호텔 대화재(大火災)
7. 실미도 특수군 난동(亂動)
8. 광주단지 난동
9. 사법부 파동
10. 무령왕릉 발견

 1971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베를린 협정 조인
2. 영국 롤스로이스사 파산 선언
3. 방글라데시공화국 수립
4. 소련 소유즈11호 비행사 3명 사망
5. 미국 탁구팀 중국 방문, 핑퐁외교 시작

6. 일본 여객기 추락 162명 사망
7. 흐루시초프 사망
8. 임표 추락사
9. 파키스탄-인도 전면 전쟁
10. 중국 유엔 가입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른바 록 음악 최고의 전성기.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IV를 발표,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헤비 메탈 열풍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해당 앨범은 무려 4,000만장이 팔려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1위에 오른다. 존 레논 Imagine 에릭 클랩튼 Layla가 이 해에 발표되었으며, 더 후 Baba O'Riley, 레드 제플린 Stairway to Heaven, 핑크 플로이드 Echoes이 발매되었다. 음반으로는 데이비드 보위 최고의 앨범으로 손꼽히는 Hunky Dory 롤링 스톤즈 Sticky Fingers가 발매되어, 1967년과 더불어서 록 음악 팬들에게는 가장 의미가 깊은 해이기도 하다.

국제연합은 이 해를 '인종차별 반대 투쟁의 해'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컬러로 제작된 영상 광고가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광고 품목은 다름아닌 코카콜라. 놀랍게도(?) 유튜브에 올라와있다. 보러 가기

1971년생은 2018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통계상 가장 인구가 많다

 

- 1972년

 1972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10월 유신(維新)
2. 7·4 공동성명(共同聲明)
3. 8·3 조치(措置)
4. 적십자대표등 남북왕래
5. 중부 영남지방 물난리

6. 신민당(新民黨) 당권(黨權)경쟁
7. 서울 시민회관 화재
8. 군납부정(軍納不正)
9. 신라금관 발견
10. 시스타호 침몰과 파크로버호의 조난

1972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닉슨 미국 대통령 북경방문  
2.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 체결
3. 닉슨 대통령 재선
4. 유엔 인간환경회의 스톡홀름서 개막
5. 뮌헨올림픽 개막

6. 아랍게릴라, 뮌헨올림픽선수촌에 난입
7. 일본-중국 국교정상화
8. 워터게이트 사건
9. 니카라과 대지진
10. 일본 적군파게릴라 텔아비브 공항 습격, 26명 사망

1972년은 토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한국에서는 제4공화국의 출범, 즉 유신 헌법이 시작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국에 위수령 긴급조치 등이 선포되었고, 그에 맞서 야당과 재야 운동권을 중심으로 반(反)유신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한반도 전체적으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해다. 북한은 주석제를 신설한 헌법 개정에 따라 국가수반이 최용건에서 김일성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한국경제가 북한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공업이 급속도로 고도화되고 발달하기 시작하였다.[1]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도서의 해'로 지정했다.

1966년에 1원, 5원, 10원 주화, 1970년에 100원 주화가 발행된 이후, 이어서 직전 주화보다 소액인 50원 주화가 처음 발행되었다. 이 때문에 액면가 순 발행순서가 아니게 되었다.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사망하는 장면이 밈화되어 심영물이나 월수의 김근육 시리즈에서 많이 다뤄지는 해이다.

 

- 1973년

1973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김대중씨 납치 사건
2. 석유난과 물가고
3. 대학생 데모
4. 정보부장 경질 개각
5. 6·23 선언

6. 윤필용 사령관 구속
7. 국민 복지 연금법
8. 체육·연예인 등 방소
9. 경주서 기마도(騎馬圖) 발굴
10. 고교입시 개혁

1973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아옌데 칠레대통령, 피노체트의 군부쿠데타로 피살
2. 동서독 유엔 동시가입
3. 제4차 중동전 발발
4. 제1차 오일쇼크
5. 태국 반정부시위로 타놈수상 사퇴

6. 소련 초음속여객기 파리에 추락
7. 파리평화협정 조인
8. 피카소 사망
9.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페론 당선, 18년만의 재집권
10. 미소정상회담

1973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핑크 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발매해 음악 감상의 기준법을 완전히 바꿔버린 해이다. 이 해를 시작으로 1988년까지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빌보드 차트에 등재되었다.

이 해부터 본격적인 전국 기상관측이 시작되었다

 

- 1974년

1974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8·15 저격 사건
2. 긴급조치 선포
3. 인권 및 개헌 데모
4. 물가고와 환율 인상
5. 민청학련 사건

6. 朴·포드 회담
7. 박영복 부정 대출
8. 대왕코너 화재
9. 해군 함정 전복
10. 김영삼 신민당권 장악

 1974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솔제니친 추방
2. 이디오피아 셀라시에 황제 폐위
3. 닉슨 대통령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사임
4. 야구선수 행크 아론 715홈런 달성
5. 인도 핵실험 성공

6. 다나카 일본 수상 사임
7. 그리스, 국민투표로 142년간의 왕정 종식  
8. 진시황릉 첫 발견  
9. 미국 신문왕 허스트의 손녀 패트리샤 허스트 유괴
10.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 당선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전세계를 물가폭등과 불황으로 떨어뜨린 오일쇼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 1973년까지 중산층 확대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실현한 선진국들이 누리던 "자본주의 황금기"가 끝장났다. 정치적으로 격동기라, 당시 전세계 G5라고 할만한 국가들의 최고 지도자들이 한해에 전부 날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리처드 닉슨(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 서독 빌리 브란트(귄터 기욤 사건)으로 사임),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임기중 사망),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록히드 사건으로 사임), 영국 에드워드 히스(조기총선에 과반수 당이 나오지 않고 연정 실패로 해럴드 윌슨 소수정권 탄생.)로 모두 물러났다.

대한민국에서는 중화학공업을 육성중이던 때 원유 도입값이 3배 이상 치솟는 직격탄을 맞아 물가폭등과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무역적자가 엄청나게 증가해 외화보유고가 급속히 떨어지자 정부는 달러가 흐르는 중동에 근로자를 파견해 건설을 하는 중동진출을 시작했다.
 
같은 해 정치/사회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선포로 민주세력 강경 탄압이 가시화되었다. 그 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사망해 국민장(國民葬)이 거행되었다. 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을 비롯한 수도권 전철 1호선(성북역~인천역/수원역)이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지하철 시대가 개막된 해였다.

그리고 GS수퍼마켓, 오리온 초코파이, 동서 프리마,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의 출시 년도이기도 하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인구의 해'로 지정했다.

헬로키티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공식 설정 생일은 이 해 11월 1일이다.

울릉도 유치원이 처음으로 들어온 해였다.

한국에서는 익명의 74년생 호랭이띠 여자의 삶이라는 온라인 글이 아동 학대, 막장 부모, 남아 선호 사상의 폐해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다.
 
 
- 1975년
 
1975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긴급조치 9호 선포
2. 동아일보 광고 사태
3. 김옥선 의원 파동
4. 유신체제 찬반 국민투표
5. 방위세의 신설

6. 12·19 전격 개각
7. 김대두 사건
8. 박동명 사건
9. 남해안 밀수조직 적발
10. 조총련계 동포 모국 방문
 

 1975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월남 패망  
2. 장개석 사망
3. 수에즈 운하 8년만에 재개
4. 아폴로-소유즈 도킹
5. 레바논 내전상태로 돌입

6. 제1회 주요선진국정상회담
7. 아랍게릴라, 빈 소재 OPEC본부 습격 인질극 난동
8.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노벨평화상 수상
9. 스페인 프랑코 총통 사망
10. 파이잘 사우디 국왕 피살

 

1975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는 전세계를 대불황의 수렁에 빠트린 오일쇼크의 정점을 찍어 전년도보다 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중동진출로 본격적으로 달러를 크게 벌어들이기 시작한 해이기도하다.

동남아에선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베트남 공화국은 패망되어 10년 가까이 계속되었던 베트남 전쟁이 끝났고, 라오스 왕정의 폐지로 라오스 내전이 끝날 뿐더러 캄보디아에선 폴 포트가 집권하여 4년 동안의 학살극의 시대가 개막되기도 하였다. 한편 서양에선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해 스페인은 다시 입헌군주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국내정세는 인도차이나 사태 당시 공산화 위협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에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의 최종보스격인 긴급조치 9호를 발효하고 사회안전법 등 4대 전시입법을 만들면서 민주화 세력은 움츠러들기 시작했고,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이 준공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마 김대두 경찰에 체포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도예종 등 여덟 명이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낸지 18시간만에 전격 사형당했다. 또 대중음악계에서는 잇따른 금지곡 판정 사태와 '대마초 파동'이 불거져 이 땅의 대중음악계가 멸망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또 부처님오신날 어린이날[1] 공휴일로 제정되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했다.

 

- 1976년

 1976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북한의 판문점 도끼 살인
2. 양정모, 올림픽서 첫 금메달
3. 동해 어부들의 조난
4. 신민당의 당권 교체
5. 세제 전면 개혁 단행

6. 영산강·안동댐 준공
7. 신안 해저보물 인양
8. 유례없는 벼농사 대풍
9. 재벌의 부조리 척결
10. 수출고 80억불 달성

 1976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미국 우주선, 바이킹 1호 화성에 연착륙
2.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수상, 록히드사건으로 구속
3. 세계 곳곳에서 천재지변
4. 제1차 천안문 사태-모택동 사망-4인방 체포
5. 남아공 소웨토에서 흑인폭동

6.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개막
7. 카터 미국 대통령 당선
8. 이스라엘 특공대 엔테베공항서 인질구출
9. 영국-유고 여객기 공중 충돌, 탑승자 176명 전원사망
10. 초음속 콩코드기 파리와 런던에서 첫 상업취항

1976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중국에서는 혼란스러운 해였다. 풍운아 저우언라이 총리와 마오쩌둥 주석이 8개월 간격으로 사망한 해. 주더도 이 해에 사망했다. 탕산 대지진이 일어나 수십만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10년 광기가 끝났고, 이로서 덩샤오핑이 이를 계기로 세 번째 복귀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원화에서는 일원 주화를 제외한 모든 동전이 단 1개도 발행되지 않은 해이기도 하다. 이 해는 음력 8월에 윤달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해에 열렸던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금메달을 획득하게 되면서 올림픽 열기가 달아올랐던 시기이며 당시 유신시대의 정점을 찍은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해 쌀 수확량이 36,215,000섬으로 전년도보다 11.7% 증수되어 식량 자급화율을 110%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신안 바닷속에서 처음으로 문화재를 끌어올린 해이기도 하다.

축구계에서는 걸출한 실력의 스타들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호나우두, 뤼트 판니스텔로이, 프란체스코 토티, 미하엘 발락, 안드리 셰브첸코,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파트리크 비에라, 안정환 등 1976년생 축구선수들이 대표적인 황금세대로 뽑힌다. 이들의 은퇴 이후의 차기 황금세대는 1992년생으로 넘어가게 된다.

 

- 1977년

1977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이리 화약 폭발
2. 박동선 사건
3. 에베레스트 정복
4. 부가세 실시
5. 행정 수도 구상

6. 쌀 대풍 쌀 막걸리
7. 수출 100억 달러
8. 김대중씨 이감, 구속자 석방
9. 의료보험 실시
10. 급식빵 식중독

1977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루프트한자 여객기 피랍 
2.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사상 최초로 이스라엘 방문
3. 카나리아군도 점보여객기 충돌로 582명 사망
4. 등소평 부주석으로 복권
5. 브레즈네프 국가원수로 선출

6. 스페인 41년만에 총선거
7. 루마니아를 비롯한 발칸반도 강진으로 1541명 사망
8. 찰리 채플린 사망
9.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10. 왕정치 일본 프로야구 선수 756호 홈런 세계신기록 달성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해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뜻있는 해이기도 한데, 바로 국민소득 1,000달러 및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이었다. 너무 가난한 이들이 가득해 세금이 안 걷혀 원조농산물을 시장에 판 돈이 국가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던 세계 최빈국이 15년만에 중진국에 진입하였다.

연예계에서는 정윤희, 장미희가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유지인이 드라마 서울야곡에서 인기를 끌어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 시대를 열던 해이기도 했다. 이 해에 장미희는 드라마 이외에도 영화 겨울여자의 흥행 성공으로 트로이카 중 선두주자로 앞서나갔다. 겨울여자의 경우에는 별들의 고향의 흥행기록을 깨서 14년동안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고수하였다.[1]

방송계 역시 1927년 JODK 개국을 기준으로 '한국방송 5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였다. 이에 따라 KBS도 <한국방송사>란 책을 냈다.

더불어 수백년간 인류를 위협하던 천연두가 완전히 박멸된 해이기도 하다.

음악계에서는 전설적 밴드 산울림이 데뷔하였고, 영미권에서는 두 가지의 장르인 펑크와 디스코가 절정을 맞아 대중음악계의 최고 격변기 중 하나가 열렸다.

 

- 1978년

 1978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대통령 취임과 선거 개각
2. 12·27 대사면
3. 3大 스캔들
4. KAL기 소련에 강제 착륙
5. 투기 억제 88 조치

6. 국산 유도탄 개발
7. 담양 농약 중독 사건
8. 노풍 피해 2백30만섬
9. 수입 자유화 단행
10. 홍성의 지진

1978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시험관아기 탄생
2. 캠프데이비드, 중동평화협상
3. 달러화 가치폭락
4. 미-중국 수교 발표
5. 이란국정 위기

6. 日 오오히라내각 발족
7. 이탈리아 붉은여단,모로 납치-살해
8. 인민사원 집단자살
9. 사상 첫 동구출신 교황 탄생
10. 등소평의 중공현대화작업

한국에선 지속되는 고도 성장으로 민간 경제는 크게 나아졌는데 반해 물가고와 심각한 생필품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부가가치세 신설로 불만이 많아져 12월에 총선에서 부가세 철폐를 내세운 신민당 민주공화당이 참패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입지가 크게 악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여파는 2차 오일쇼크와 겹쳐서 부마항쟁, 10.26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최악의 해이다. 이 해를 기준으로 그 전까지는 풍요롭고 살기 좋았던 아프가니스탄이 이 해 이후부터는 공산당 무자헤딘 총탄을 퍼붓으며 싸우는 지옥이 되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부터 1979년까지를 '세계 반인종차별의 해'로 지정했다.

1978년생은 21세기에 최초로 대학을 졸업했다.

 

- 1979년

1979년도 동아일보 국내 10대뉴스
 
1. 朴대통령 서거·崔대통령 취임·긴급조치 9호 해제
2. 12·12 사태
3. 부산 계엄령·마산 위수령 선포
4. 김영삼총재 가처분 서명
5. YH사건·경찰 신민당사 진입

6. 율산파동과 은행장 구속
7. 카터 방한 주한 미군 철수 보류
8. 석유류 제품 가격 59% 인상
9. 중남부 지방의 폭우·태풍 피해
10. 금당 사건

1979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이란 회교 혁명
2. 드리마일섬 핵 사고
3. 중국- 월남전  
4. 니카라과 정변
5. 테헤란 인질사건

6. 아민-보카사 급락
7. 유가인상
8. 소련 전투부대 쿠바 주둔
9. DC-10기 연쇄추락
10. 캄보디아 기아

1970년대의 마지막 해.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979년 10월은 희대의 징검다리 연휴가 찾아 왔다. 10월 1일 (월) 국군의 날(당시 공휴일), 10월 3일 (수) 개천절, 10월 5일 (금) 추석, 10월 7일 (일), 10월 9일 (화) 한글날.

한국에선 이 해 상반기부터 2차 오일파동, 율산사태, YH 사건, 부마항쟁 등으로 매우 뜨거웠다. 10월 26일에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살해된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다음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11월에 한국 대통령 중 최초로 국장(國葬)이 거행되었다. 그리하여 유신정권과 긴급조치가 종식되었으나[1] 대한민국의 정치는 무주공산의 권력 진공 상태에 들어가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은 구심점을 잃어 혼란에 빠졌고 민주세력들도 갈피를 못 잡았다. 그 상태로 곧바로 12.12 군사반란이 발생해 하나회가 정권을 잡을 채비를 마련했다.

위와 같은 혼란 속에서도 경제 분야에선 한국증권거래소가 정들었던 명동을 떠나 여의도로 이전해 '여의도 증권가' 시대 개막의 토대를 다졌고, 롯데그룹 측은 롯데호텔 서울 개장, 롯데리아 1호점 개점, 롯데쇼핑센터 1호점 개점을 각각 이뤄내 고도성장의 틀을 마련했다. 영화계에서는 2세대 트로이카 여배우 유지인, 정윤희가 절정기를 맞던 시절이었다. 각각 내가 버린 남자,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비롯하여 수 편의 영화를 한 해에 성공시켰다.

전세계적으로 지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급진적인 사회변화와 혼란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영국에서는 마가렛 대처가 총리로 취임했고,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다음해 대선 승리의 발판을 다졌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 사인방의 과격한 정책을 배격한 덩샤오핑이 당내 극좌파를 제압하고 권력을 잡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당시 공산국이었던 폴란드를 방문해 공산정권을 비판하며 곧이을 민주화 운동을 예고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이슬람권에서 일어났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무신론자'들의 침공으로 여겨져 큰 충격을 주었다. 이란 혁명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 공성전은 서양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었다. 이미 명분을 잃고 약해져있던 아랍 민족주의는 급속히 쇠퇴해 이슬람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혁명이 난 이란뿐만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같은 나라들도 서구화가 중단되고 급격히 보수화됐다. 미국 등 서방진영 국가들은 반공을 명목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원했지만 그 대가를 치루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미국 음악계에선 슈가힐 갱이 신종 음악장르 힙합을 유행시켰는데, 슈가힐 갱은 힙합을 처음 상업적으로 녹음해 음반으로 판매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아동의 해'로 지정했다.

 

- 1980년

 1980년 조선일보 국내 10대뉴스
 
1. 광주민주항쟁
2. 김대중씨 재판
3. 5.17과 '3김'퇴장
4. 학원사태
5. 냉해, 흉년, 마이너스성장

6. 사북사태
7. 국보위와 사회정화
8. 언론, 중화학 통-폐합
9. 과외금지 교육개혁
10. 전대통령 취임... 새헌법 공포

 1980년 조선일보 국제 10대뉴스
 
1. 이란-이라크 전쟁
2. 폴란드 노조운동  
3. 레이건 당선
4. 서방 60국 올림픽 불참
5. 유가인상과 불황

6. 이-알제리 대지진
7. 미 인질구출 실패
8. 보이저1호 토성탐색
9. 중공 4인방 재판
10. 티토 사망

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자 1980년대의 첫 해이다.

당시 한국에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후 계엄 상태로 '안개정국'이 조성되어 개헌 방향을 놓고 정치권이 혼란에 빠졌고, 민주화세력들도 갈팡질팡했다. 그런 형국에 서울의 봄 5.18 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좌절, '사회정화'를 앞세운 국보위의 대숙청, 인권유린 수용소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 암울한 사건만 터져나왔다. 경제적으로도 1950년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이 감소한 해이다.

소련에서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이, 미국에서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이 열렸는데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는 한국, 일본, 서독, 캐나다, 미국 등 서방 국가 및 민주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하였다. 이 올림픽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불참하였다.[2]

한국에서는 이때부터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미 컬러 방송을 시작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규제 논란으로 판매가 지연되다가, 1980년 8월에 컬러 TV 수상기의 판매를 공식 허용하고 12월부터 컬러로도 TV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다.[3] 그러나 컬러방송을 같이 해야 할 동양방송은 언론통폐합으로 KBS에 합쳐졌고, 동아방송도 TV 방송조차 아예 못한 채 KBS에 흡수합병됐다. 심지어 기독교방송은 뉴스와 광고를 잃었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유난히 서늘하고[4][5]흐린 날이 많아 냉해 피해가 심각했던 해였다.[6] 이로 인하여 1977년에 쌀 풍년으로 쌀을 수출했던 한국에서는  생산량이 30%나 감소하며 심각한 농업 피해를 입었으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7] 민심 이반을 두려워한 전두환 정권은 농림부를 동원해 미국에서 사들인 밀과 쌀을 정부미로 풀어 겨우 사태를 무마했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중부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 가뭄이 몰아닥쳐 농업 피해가 컸으며, 이로 인하여 세계적인 옥수수,  생산 지역인 이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국제 농산물 가격도 올라갔다.

이 해에는 한국에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한국 선수단은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선 노메달을 기록했고, 뒤이어 개최된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도 정치적 이유로 불참함에 따라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첫 출전하게 된지 32년만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열기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에 미국은 지미 카터 행정부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항의하는 표시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고 일본 역시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였다. 다만 소련의 맹방이었던 북한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올림픽 열기는 한반도 기준으로 북한에서만 전파하게 되었다.

1979년에 시작된 강변가요제도 이해에는 열리지 않았다. 열릴 맛이 나겠는가

학계에선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가 저서 <제3의 물결>을 발표하여 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에 이어 '정보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일찍이 예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적 불황과 신군부의 군사반란으로 인한 민주화 실패가 겹쳐서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 최대의 암흑기 중 하나인 해였다.

영미권 대중음악계에서는 디스코 열풍이 끝나고 과도기를 맞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용필이 정규 1집을 발매해 본격적으로 부동의 원탑 가수로 올라서기 시작한다.

천연두가 이 해에 종말을 고했다. 마지막 감염은 197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