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小史와 歷史를 정리해 보다

21. 1988년 小史(대학 2학년)

남형윤 2021. 12. 10. 15:08

1. 1988년은 우리나라 국운이 가장 크게 열린해이며, 대학 2학년이고 큰 민족의 융성기를 이루었다. 이즈음, 둘째형이 결혼은 앞두고 있었으며, 그동안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호텔 지배인 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어머니와 나, 그리고 형님 가족들과 함께 살기를 희망하면서 삼천포 벌리동에 제법 규모가 큰 단독 양옥집을 구입하여 전 가족들이 이사를 하였다(1988년 2월 21일, 삼천포시 벌리동 57-2 번지로 이사를 하다). 둘째형은 가을에 결혼을 하다.

 

- 2학년에 진학하고 학보사 편집국장을 맡게 되어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학보사를 이끌어 갔으며, 학교 신문 발행을 총괄하면서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더욱 많이 읽게 되면서 공부를 많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밴드 동아리 활동은 김정구 친구가 리더를 하면서 나는 다소 조심스러운 활동을 하면서 밴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더불어, 학내 봉사 활동과 사회참여 활동에는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 하였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우정은 끈끈하게 지속하게 되었다.

 

- 한편, 학내 비리 문제와 관선 이사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아, 학생회 간부들과 학보사 간부들, 그리고 동아리 연합회 간부들과 함께 농성을 지속하고, 투쟁과 단식도 병행하는 학내 투쟁을 이어 나갔다. 생애 처음으로 1주일간의 단식 농성을 경험 하였다. 지금의 청솔회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쌓고, 지금까지 끈끈한 친구와 모임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 여름 방학 때는 청솔회 친구들과 지리산에서 2주일 간의 MT를 다녀왔고, 부산과 마산 등 경남 일원에 실습을 나간 친구들을 찾아 다니면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 여행을 많이 하면서 원없이 후외없이 놀고, 즐기고, 술마시고, 여행하는 젊음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면 놀았다.

 

- 공식적으로 첫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카디아 후배인 친구로 따듯한 심성을 가진 친구였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21살의 젊은 시간을 보냈다.

 

- 짧은 2년간의 진주간호보건전문대학 생활은 나의 삶의 지표를 설정하고, 정치적 지향점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학내 문제로 인한 집회와 시위, 87년 6월의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집회와 시위, 시국 강연을 들으며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몸소 경험을 통해 한층 더 발전하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 큰 수확이다. 더불어, 학보사 활동을 통해 사회참여와 사회과학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밴드 동아리 활동으로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음악 활동을 직접 경험 하였으며,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만끽하며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이 행운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친구들을 만나 평생의 우정을 쌓아가는 기회를 만들었고, 첫번째 여자 친구를 만나 짧지만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좋은 친구들과 마음껏 놀고, 마음껏 여행하고, 마음껏 취해보고, 마음껏 행동했든 소중한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2.  제6공화국이 출범하였다,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고, 민주적인 정권이향 첫번째 케이스가 되었다. 4월에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루어져 첫 여소야대가 되었다. 유신이후 첫번째로 치루어진 소선거구제 에서 평화민주당이 호남석권과 서울 17석으로 제1야당으로 등장하면서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되어 집권여당인 민정당이 고전 하였다.

 

3. 전두환의 5공 청산과 5공비리로 전경환 등 5공인사들이 구속수감되면서 전두환도 강원도 백담사로 은둔하였다. 이어진 5공 청문회는 16년만에 실시되엇고, 정치적으로 획을 그렸으며 청문회스타가 노무현등이 배출되었다. 재벌회장, 5공인사들이 출서해 tv생방송으로 중계되어 전국민들을 분노하고, 기뻐게도 하였다.

 

4. 대한민국 건국이래 가장 큰 행사인 88서울 올림픽이 성대하게 개최되어 국운 상승기를 맞았다. 9월 17일 부커 16일간 펼펴진 세계의 평화축제는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84년 la올림픽은 각각 서구권과 동구권이 정치적인 이유로 불참하는 반쪽자리 대회로 개최되었지만, 88서울 올림픽은 명실공히 서구권, 동구권을 막라하고 전세계 160개국 13,000명의 선수단이 참가하는 화합의 제전이었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금매달 12개를 획득하여 세계 4위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밴 존슨의 약물파동이 아쉬움을 더해주었다.

 

5. 사회적으로는 올림픽 이후 미결수 탈주극이 대낮에 이루어져, 교도행정의 미숙과 해이해진 치안능력을 보여주었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탈주극 인질극은 사회의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또한 오흥근 기자가 출근길에 테러를 당하는 일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군대의 조직적인 범죄가 민,군의 갈등을 보여주었다.

 

6. 대법원장 동의안이 부결되는 사법파동이 있엇고, 사법부의 쇄신을 요구하는 소장판사들의 성명발표와 서명파동이 일어났다. 사법부의 독립과 안정을 희망했다. 김용철 대법원장 사퇴하고, 정기승 대법관 국회 인증 부결, 신임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하였고, 사법부의 독립 기능이 강화 되엇다.

 

7. 경제적으로는 환율 하락으로 우리나라의 수출 채산성 악화와 국제 경쟁력이 약화 되었다. 연초 790원대에서 600원대로 진입하여 경제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8. 동구권 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소련, 유고, 폴란드, 불가리아 등 공산권 국가들과 통상약정이 진행되엇고, 헐가리와는 통상 패표부가 설치 되었다. 동구권과의 관계개선 되었다.

 

9. 이해는 학생운동이 통일운동의 선봉이 되엇다. 6.10/ 8.15 남북 학생 국토순레가 진행되어 전 국민적 관심으로 떠올랐으며, 통일논의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