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小史와 歷史를 정리해 보다

10. 1977년 小史(초등 3학년)

남형윤 2021. 11. 9. 17:17

1. 1977년은 내가 10살이 되는 해이고 문선초등학교 3학년 이다.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항상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시는 동안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주 드물게 비가 많이 오던 어느날 어머니가 무슨 일이신지 그날은 장사를 하루 쉬었다. 이날 나는 거의 독립만세 수준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하루를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어디를 놀러 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엄마와 하루종일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 그리고, 어느 날 고성 장날에 장사를 하시다 주변 옷장사와 생선과 청바지를 맞바꾸어 나에게 선물로 주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 세째형(1963년생. 나의 바로 윗 형)은 나와 나이가 5살 차이가 나며, 초등학교 졸업 후 형편이 어려워 정규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소위 야간 중학교(당시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 모여 공부를 한 후 검정고시를 치는 비인가 과정)를 다니며, 아침에는 신문배달로 주간에는 작은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저녁이면 야간 중학교를 다니는 엄청나게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연유인지 하나뿐인 동생인 나에게 가끔씩 자주 손찌검을 하였고 나는 이런점이 너무 싫었고 두려웠었다.

 

- 둘째형(1960년생)은 당시 18살로 고등학교 2학년 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이었지만 우리집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였고, 스스로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삼천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 첫째형(1955년생)은 당시 23살로 중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완전한 사회인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즈음 집에서도 독립을 하고, 지금의 큰 형수님과 사귀면서 동거생활을 하면서 실질적인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있었든 것 같다. 자동차 정비와 운전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이런 연유로 어머니와 우리집에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2.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에서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게획을 시작한 이래 15년 만에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해 중진국으로 진입하는 역사적인 해이다.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으로 대표되는 신 여성 2세대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겨울여자가 대히트를 치면서 한국영화에서 신기록을 쓴다.

 

3.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서 사상 최악의 항공참사인 테너리페 참사가 일어난다.

 

4.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원자력 1호가 가동되어 원자력 발전 시대를 열었고, 부가가치세와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었다. 이리역 폭발사고가 일어나 충격을 안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