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小史와 歷史를 정리해 보다

역사상 자연재해 사건 정리

남형윤 2022. 7. 22. 11:18

온실화된 지구의 끝없는 여름
 

 

지난 2세기 동안 진행된 폭발적인 산업 활동으로 세계 전체가 심각한 변화를 겪었는데, 인류에게는 이것이 대체로 손해라기보다는 이익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한 가지 영향 때문에 그러한 균형이 갑자기 깨질지도 모른다. 기계시대에는 석탄과 석유가 주연료였고, 그것들은 많이 연소한 결과 많은 양의 이상화탄소가 대기중에 배출됐다. 1950년대 말부터 대기중의 이산화탄소양이 25퍼센트 증가했다. 이것은 온실의 유리 지붕처럼 햇빛을 받은 토양의 온도를 높이고 일반적으로는 대기권 밖으로 되돌아 갈 열까지도 가두어 버린다.
 

실제로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이산화탄소 증가량에 비례하여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1880년대 설씨 14.4도에서 현재 섭씨 15.2도로 바뀐 것처럼, 아주 미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이것이 현재 최고치이다.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되면--금세기 들어 가장 더운 4년이 1980년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최고 섭씨 5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그 결과 엄청난 참화를 가져올 수 잇다. 가뭄, 홍수, 그리고 허리케인들이 잦아질 것이고, 세계의 기상형태가 변화할 것이다. 광대한 옥토들이 사막이나 비가 아주 적은 대초원 지대로 변할 것이다. 건조지대가 새로 늘어나면서 수천의 농장이 황폐해질 것이고, 수많은 피난민들은 이미 더위에 지치고 인구가 과밀한 도시들로 몰려갈 것이다. 미국과 서부 유럽의 국가경제구조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물론 상황이 어디서나 그렇게 절박한 것을 아니다. 아프리카의 서힐과 다른 가뭄지역에서는 강우량이 늘어날 지도 모르며, 캐나다와 소련에서는 거대한 툰드라 지역이 새로 해빙되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건 나쁘건 오늘날의 세계는 필경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천재지변 일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엄청나게 큰 천재지변이 인류를 괴롭혀 왔고, 우리가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한 앞으로도 틀림없이 그러한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자연 재난은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자연의 파괴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골라서 살펴 보았다. 다음은 과거와 현재에 발생한 갖가지 천재지변 중 가공할 만한 힘과 파괴력을 보여준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것이다.

   

눈사태, 산사태
 

이탈리아 알프스. 기원전 218년 10월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던 명장 한니발 휘하의 카르타고군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군사 1만 8000명, 군마 2000필 그리고 몇 마리의 코끼리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그중 다수는 알프스의 산사태가 원인이었다.
 

이탈리아 북구, 키아베나 계곡. 1618년 9월 4일 산사태로 부락 두 개가 매몰되고 2427명이 사망했다.
 

스위스, 사스. 1689년 겨울 알프스 산맥의 여러 마을에서 눈사태로 300여명이 죽었다. 70여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 마을(현재의 클로스터스 스키장 근처)은 피해가 가장 컸던 마을 중의 하나였다.
 

스위스, 골도 계곡. 1806년 9월 2일 스위스 중부에 있는 높이 1500m의 로스베르크산이 갑자기 진동했다. 그 결과 산사태가 일어나 네 개의 마을에서 457명이 죽었다.
 

워싱턴주 웰링턴. 1910년 3월 1일 캐스케이드산맥의 이 간이 역 근처에서 대규모의 눈사태가 발생하면서 승객을 태운 열차 한 대가 탈선하면서 45m 아래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졌다. 무려 118명이나 되는 사람이 미국 역사상 최악의 눈사태에 파묻혀 죽었다.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알프스. 1915--1918년 제1차대전중 알프스 전선의 약 4만명 가량의 군인들이 여러번의 눈사태로 죽었는데, 주로 고의적인 포격에 의한 사태였다.  겨울산은 이탈리아 군대보다도 더 무서웠다.  이것은 단 48시간 동안 발생한 여러 차례의 눈사태로 약 3000명의 군인이 사망한 후 오스트리아의 한 스키 부대 교관이 한 말이다.
 

중국, 간쑤성. 1920년 12월 16일 이 북부 산악 지대에서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8.6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련의 무서운 산사태가 일어났다. 지진과 산사태로 무려 20만명이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소련 타지크공화국, 카이트. 1949년 한 차례의 지진으로 일어난 두 번의 산사태가 중앙 아시아의 카이트시를 덮쳐 1만 2000명의 사망자를 냈다.
 

오스트리아, 블론스 마을. 1954년 1월 12일 오전 10시 30분 눈사태가 인구 367명 내외의 블론스 마을 중심부를 강타했다. 9시간 후, 사망자 발굴 작업을 하고 있던 생존자들을 덮치는 또 한 차례의 사태가 일어나 총 200명의 사망자를 냈다.
 

페루, 우아스카란 설봉. 1962년 1월 10일 안데스산맥 최고봉 중의 하나인 우아스카란의 비탈에서 3톤의 눈과 얼음이 무너지면서 대형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 산사태로 인한 사망자 수는 4000명이었다.
 

페루, 우앙카벨리카주. 1974년 4월 16일 리마 동남쪽 약 370km 지점에 있는 이 지역에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최소 200명이 사망하고, 9000명의 이재민이 소개되었다.
 

인도, 라하울계곡. 1979년 3월 초 인도 북부 히말라야산맥 기슭에 근 일주일간 폭설이 내린 후 눈사태가 발생하여 라하울계곡이 최고 6m 높이의 눈에 묻혔다. 이 눈사태로 200명 이상이 죽었다.
  

 아무도 우는 사람은 없었다...장례식이 끝나자 우리는 한 사람씩 줄지어 나갔다. 아무도 입을 떼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똑같이 또 다시 닥칠지도 모르는 눈사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람에 불려 쌓인 눈더미와 심한 눈보라를 헤치며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갔다. 온 마을에서 단지 다섯 채의 집만이 온전하다. 블론스 마을의 옛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들 중 몇 사람이나 되었을까?
1954년 블론스 눈사태 보도 기사 중에서
 

중국, 쓰촨성. 1981년 10월 중국 남부의 쓰촨성에서 일어난 일련의 산사태로 240명이 사망했고, 10만명의 마을 주민이 집을 잃었다.
 

터키, 카타크 마을. 1988년 6월 23--24일 흠뻑 비에 젖은 여러 톤의 진흙과 돌멩이가 산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 흑해에 인접한 평화로운 이 마을을 덮쳤다. 이 재난으로 약 300명의 마을 주민이 사망했다.

   

한발. 기근
 

유럽 중부 및 서부. 1315--17년 1315년 봄과 여름, 이 지역에 이상 폭우가 내리면서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그 결과 이 지역 인구의 10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이 이 기근으로 사망했다.
 

인도, 벵골. 1769--70년 이 시대로부터 1900년 사이에 발생한 세계 10대 기근 중 다섯건이 인구 밀집 지역인 인도에서 발생했는데, 그로 인한 사망자수는 1300만 내지 2600만명 가량이나 된다. 기근의 원인은 대개 우기에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았거나, 아니면 과도하게 비가 내려 농작물에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었다.
 

구소련. 1921--22년 구소련의 곡창 지대인 러시아 남부 및 우크라이나에 한발이 들면서 농작물이 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발생한 기근으로 500만명 가량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1928--29년 중부 3개 성에서 발생한 한발로 300만명의 사람이 죽었다.
 

중국. 1988년 하지 무렵에는 이미 중국의 중부와 남부의 비옥한 곡창 지대에서 수백만 헥타르의 농경지가 한발의 피해를 심하게 입었다. 한편 황해의 해안 일대에서는 돌발적인 홍수로 수천명의 중국인이 죽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이 나라의 농작물이 매우 심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 및 캐나다. 1988년 1930년대의 황진지대(미시시피 서부의 평원지대를 일컫는 말)시절 이래 미국을 강타한 최악의 한발로 캘리포니아주에서 조지아주에 이르는 지대와 캐나다의 매니토바주, 서스캐처원주 및 앨머타주 일대의 비옥한 농장과 목장이 거의 황무지로 변하고 말았다. 한여름이 되었을 때 그 한발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피해를 기록했다.

   

지진. 쓰나미
 

중국, 발해만. 1290년 9월 27일 중국 동북부에서 일어난 이 지진은 약 10만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이 지진은 사상 최악의 10대 지진 중 하나다.
 

중국, 산시성. 1556년 1월 23일 중국 북부 지역인 산시성에는 수백만명의 영세 농민들이 절벽에 토굴을 파고 거주하고 있었는데 대지진으로 절벽의 토굴들이 무너지면서 80여만명이 죽었다.
 

코카서스, 셰마하. 1667년 11월 견직물 제조로 유명한 중앙 아시아의 셰마하에 지진이 발생하여 8만명이 사망했다.
 

자메이카, 로열항. 1692년 6월 7일 지진과 해일이 겹쳐 카리브해의 해적 소굴인 로열항이 지상에서 사라지면서 수천명이 죽음을 당했다.
 

에콰도르 키토. 1797년 2월 4일 한 차례의 대지진으로 해발 2800여m 지점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 주변의 경관이 크게 변모했으며 4만여명에 달하는 주민이 거의 다 죽었다.
 

칠레, 콘셉시온. 1835년 2월 20일 찰스 다윈(영국의 박물학자, 진화론의 제창자)도 목격한 이 지진으로 칠레의 콘셉시온시와 산티아고시에서 5000여명이 죽었으며 지진과 해일로 탈카후아노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1886년 8월 31일 미국 동해안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지진 중 최강의 지진으로 보스턴에서 뉴올리언스 그리고 멀리 서쪽으로는 밀워키에서도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최대의 피해를 입은 곳은 찰스턴이었는데, 사망자만도 100명이나 되었다.
 

중국, 간쑤성. 1932년 12월 26일 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이곳 중국 북부 지역에 또 하나의 지진이 일어나 약 7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일본, 산리쿠. 1933년 3월 3일 지진 다발 지역인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섬인 혼슈 동북부의 산리쿠 지방에서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해일로 3000명이 죽고, 8000척의 배가 침몰했으며, 9000채의 가옥이 파괴되었다.
 

터키, 에르진잔. 1939년 12월 27일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8을 기록한 지진은 터키 동부의 이 도시를 사실상 쓸어버림으로써 2만 내지 4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인도, 아삼. 1950년 8월 15일 사상 최강의 지진 중의 하나가 브라마프트라강의 수위를 높임으로써 인도--티베트 경계선에 인접한 인구밀도가 낮은 한 지역에서 약 1500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격심한 지진이 한번 일어나면, 일시에 우리의 가장 오래된 생물 군집들이 파괴된다. 바로 견고성의 상징인 지표면이 우리 발밑에서 유체를 덮고 있는 엷은 껍질처럼 움직였다--찰스 다윈
 

모로코, 아가디르. 1960년 2월 29일 해안 휴양지에서 한밤중에 일어난 지진으로 15초 만에 1만 2000명이 사망했다.
 

칠레, 중남부. 1960년 5월 21--30일 일련의 격심한 지진으로 5000여명의 칠레인이 죽었다. 5월 22일에는 최악의 진동으로 쓰나미가 발생하여 태평양 건너편의 지역을 강타하면서 사망자수가 450명이나 늘어났다.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 1976년 2월4일 동트기 전에 일어난 한 차례의 지진으로 수천 명의 과테말라 시민이 허물어진 그들의 어도비 벽돌집 밑에 깔렸다. 이 지진과 그 여진 때문에 2만 3000명이 죽고, 5만명이 상해를 입었으며, 무려 100만명이 집을 잃었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1977년 3월 4일 모스크바에서 로마까지 진동시킨 이 지진은 십중팔구 근대에 중부 유럽을 강타한 지진 중 최강이었을 것이다.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7.2를 기록한 이 지진으로 말미암아 루마니아에서 약 1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란, 타바스. 1978년 9월 16일 마르코 폴로가 중국으로 가던 중 잠시 머물렀던 고대 페르시아의 이 상업도시는 강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또한 이 지진으로 말미암아 수십 개의 도시가 파멸되고 1만 6000여명의 사람이 죽었다.
 

알제리, 알아스남., 1980년 10월 10일 1954년의 지진으로 파괴된 후 재건된, 알제(알제리의 수도) 서쪽의 이 도시는 이슬람교의 안식일 날 정오 직후에 밀어닥친 두 차례의 진동에 의해 다시 한번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 결과 약 2600명이 죽고, 6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인도의 비하르주 및 네팔. 1988년 8월 21일 1950년에 있었던 아삼 참화 이후 히말라야산맥 지대에 발생한 최악의 지진(진도 6.5)이 인도--네팔 국경 지대를 뒤흔들어 9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고, 그 외에도 수천명의 부상자를 냈다.

   

홍수
 

네덜란드 및 영국. 1099년 밀물과 폭풍우로 홍수가 발생하여 1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해는 항상 연안의 육지, 특히 네덜란드를 위협해왔다.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열 번의 홍수 중 세 번의 홍수가(1099년, 1287년, 1421년)이 저지대에서 발생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1824년 11월 19일 부빙에 의해 막혀 있던 네바강이 범람해서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크론슈타트 부근에서 1만명이 익사했다.
 

오하이오주, 데이턴시. 1913년 3월 25--26일 폭우와 갑작스런 봄 해빙으로 오하이오강과 그 지류가 강둑을 넘어 흘러 500명 내지 700명이 죽고, 데이턴시가 거의 다 쓸려 나갔다.
 

중국 북부. 1939년 이 지역 강들이 일시에 모두 범람하자 약 50만명이 죽고, 뒤이은 기근으로 수백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푸젠. 1948년 여름 두달간 무자비하게 내린 비로 중국 동남부의 민강 둑이 터져서 100만명의 남민이 고지대로 대피했다. 사망자 수는 3500명에 달했고, 벼농사에 입힌 피해도 막심하여 푸젠성과 인접한 여러 성의 재화를 증대시켰다.
 

캔자스주와 미주리주. 1951년 7월 2개월간 내린 폭우에 뒤이어 4일간 계속된 폭풍우로 캔자스강 유역이 범람했다. 41명이 죽고, 약 34만 헥타르의 농경지가 침수되었으며, 재산 피해액은 10억 달러가 넘었는데, 이는 미국에서 발생한 단일 천재지변의 피해액으로는 최고 기록이었다.
 

 영국, 린마우스. 1952년 8월 15--16일 하루도 채 못되는 시간 동안에 내린 약 23cm의 비로 동린강과 서린강의 수량이 크게 불어나 무방비 상태로 있던 하류 지역의 린마우스 시내로 약 12m 깊이의 강물이 범람했다. 린마우스와 그 주변에서 84명이 익사했다.
 

이란, 테헤란. 1954년 8월 17일 보통때는 늘 건조하던 한 협곡에 갑자기 홍수가 발생하여 이란의 수도 테헤란 근방의 한 회교 성당에서 예배를 보던 1000여명의 순례자가 죽음을 당했다.
 

인도, 오리사주. 1955년 10월 7--12일 1955년의 심한 장마로 캘커타 서남방 약 320km 거리에 있는 오리사주에 홍수가 나서 약 1700명이 죽었다.
 

이탈리아, 바이언트댐. 1963년 10월 9일 갑자기 일어난 산사태로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이 댐 안으로 1억 5000만 통의 암석과 암석 파편이 굴러 떨어졌다. 69m 높이의 댐을 넘어 쏟아져 내린 저수지 물로 아래쪽의 좁은 피아베강 유역이 범람해서 2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 1964년 11--12월 태풍 아이리스호와 조운호가 동반한 폭우로 약 200만 헥타르의 삼각주가 물에 잠겨서 5000명이 사망했다.
 

튀니지. 1968년 9--10월 38일간 계속 비가 내린 후 보통때는 건조하던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80%가 물에 잠겨 542명이 익사하고, 100만 마리의 소가 실종됐다.
 

사우스다코다주, 래피드. 1972년 6월 9일 한달이나 계속된 폭우로 이 도시 위쪽에 있는 캐니언레이크댐이 무너지면서 물이 아래쪽에 사는 주민들에게로 밀어닥쳤다. 이 홍수로 래피드시의 80블록이 파괴되고,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콜로라도주, 빅톰프슨 캐니언. 1976년 7월 31일 돌발 홍수로 강의 수위가 6m 가량 높아지면서 빅톰프슨 캐니언으로 범람했다. 85명 이상의 사람들이(대부분은 이 휴양지로 놀러 온 사람들이었다)쓸려 내려갔다.
 

인도, 북부. 1978년 9월 수십년 만에 처음 보는 많은 비가 내려 인도 북부의 광범한 지역에 홍수가 났다. 근 520만 헥타르의 농경지가 유실되고, 캘커타에서만도 약 1만 5000명이 죽었다.
 

수단. 1988년 8월 한발과 메뚜기가 오랫동안 기승을 부리다가 8월 4일과 5일에 폭우가 내려 나일강이 범람했다. 그것은 20세기 들어 나일강에서 발생한 홍수 중 최악이었다. 8월 중순까지 홍수로 39명 이상이 죽었으며 집을 잃은 사람은 약 150만명이나 되었다.
 

방글라데시. 1988년 9월 예년과 다르게 비가 많이 내린 장마로 이 메마른 지역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익사하거나 질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2000명이나 되고, 집을 잃은 사람이 약 2500만이나 된다.

 

허리케인. 태풍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 1667년 8월 27일 나중에 미국 영토로 편입된 북아메리카 일대에서 허리케인에 관해 최초로 기록된 것은 제임스타운(북미 최초의 영국 식민지)의 허리케인이었다. 런던에서 발간된 팜플렛(버지니아에서 온 기이한 소식)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허리케인 이...여러 채의 가옥을 뒤엎고, 그 폐허 속에 많은 물건과 사람을 파묻어 버렸다. 
 

인도, 벵골만. 1737년 10월 7일 1970년 파키스탄 동부를 황폐화시킨 태풍 다음으로 위력이 강했던 이 사이클론(인도양 등에서 부는 대 폭풍)은 캘커타 근방의 후글리강 하구를 따라 2만 척의 배를 침몰시키고, 3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후 2세기 반에 걸쳐 기록에 남은 10대 사이클론 중 일곱 개는 벵골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카리브해. 1780년 10월 10--12일 기록상 최악의 대서양 허리케인이 바베이도스에서 푸에르토리코까지 휩쓸고 지나가면서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  대허리케인 으로 2만 내지 3만명이 사망했고 영국,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함대가 전멸되다시피 했다.
 

뉴일글랜드. 1815년 9월 23일 1938년 발생한  뉴잉글랜드 대허리케인 보다 123년 앞서서  9월 대강풍 이 뉴잉글랜드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두 개의 폭풍은 둘 다 똑같은 경로를 지났고, 강도도 같았으며, 해안선의 모습도 비슷하게 바꾸어 놓았다.
 

인도차이나 반도, 하이퐁. 1881년 태풍이 통킨만의 이 항구 도시를 강타했을 때 약 30만명이 사망했다. 그 외에 이 폭풍의 여파로 발생한 질병과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봄베이. 1882년 6월 6일 아라비아해에서 일어난 한 사이클론 때문에 봄베이항이 침수되었고, 그 결과 이 항구 도시와 인근의 주민 10여만명이 익사했다.
 

텍사스주, 인디애놀라. 1886년 8월 19일 이 허리케인으로 250명이 죽고, 멕시코만의 해안 도시 인디애놀라에 있던 가옥이 거의 다 파손되었다. 22년 동안 두번의 살인적인 폭풍을 경험한 인디애놀라 사람들은 정든 이 도시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푸에르토리코. 1899년 8월 허리케인 산시리아코호는 카리브해 전역, 특히 푸에르토리코에서 맹위를 떨쳤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3000명이나 죽었다.
 

일본, 도쿄. 1918년 9월 30일 지금까지 도쿄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태풍 중의 하나인 이 날의 태풍으로 1619명이 사망했고, 24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플로리다주 오키초비호. 1928년 9월 16--17일 서인도 제도에서 약 2000명의 사망자를 낸 이 허리케인은 엄청난 힘으로(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강력했다) 플로리다주의 중남부를 강타했다. 이 폭풍의 맹습으로 수 킬로미터나 되는 제방이 무너지면서 오키초비호의 물이 주변의 들판으로 쏟아져 들어와 무려 25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1930년 9월 3일 시속 320km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으로 2000명의 도미니카인이 죽고, 이 나라의 수도 산토도밍고가 붕괴되다시피 했다.
 

일본, 오사카. 1934년 9월 21일 강력한 태풍이 일본 열도의 주요 도서인 혼슈를 강타해 약 4000명이 죽었다. 대부분이 취약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던 활기찬 산업중심지의 주민들 이었다.
 

일본, 홋카이도. 1954년 9월 26일 시속 160km의 속도로 분 이 태풍으로 일본 북부의 섬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만과 그 주변에서 1600명이 죽었다. 이 태풍으로 희생된 사람들 중에는 바람과 파도에 밀려 전복한 정기 연락선  도요마루 의 승객 1172명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동부(허리케인 헤이즐호). 1954년 10월 5--18일 1954년 세번째로 동부해안지대를 강타한 대폭풍 헤이즐호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그레나다 근해에서 조그마한 열대저기압으로 시작 되었지만, 죽음의 허리케인으로 발달했다. 카리브해에서 캐나다의 토론토까지 휩쓴 이 허리케인은 1200명의 사망자를 냈다.
 

루이지애나주(허리케인 오드리호). 1957년 6월 27일 사전에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지애나주의 멕시코만 해안 지대의 주민 약 500명이 이 폭풍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것은 수차에 걸친 대피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카리브해(허리케인 플로라호). 1963년 10월 2--7일 지금까지 대서양에서 기록된 것들 중에서 두번째로 격심했던 폭풍 플로라호는 트리니다드섬(서인도제도 최남단의 섬) 남쪽에서 시작해서 카리브해를 지나 쿠바에 상륙할 때 70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미국의 멕시코만 해안지대 (허리케인 커밀호). 1969년 8월 14--22일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 전역을 무려 320km의 속도로 지나간 후, 커밀호는 계속 질주하여 동해안 중부의 여러 주에 폭우를 쏟아부었다. 피해액은 무려 15억 달러에 달했다. 폭풍으로 인한 사망자 225명의 대부분은 태풍 경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미시시피 삼각주 일대의 주민들이었다.
 

온두라스(허리케인 피피호). 1974년 9월 19--20일 카리브해의 이 살인마가 온두라스를 휩쓸고 지나가자 5000명이 사망하고, 약 6만명이 집을 잃었다.
 

카리브해(허리케인 데이비드호). 1979년 8월 31일--9월 4일 허리케인 데이비드호가 약 1주일간 카리브해를 지나가는 동안, 약 1200명이 죽었다.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도미니카 공화국이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서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오, 맙소사! 우린 이제 끝장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늘에는 진흙, 물, 코코넛 그리고 지붕을 덮었던 함석판들이 면도날처럼 날아와 뒤범벅이 되어 희부연 녹색의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잠시 후 우리집 지붕도 날아가 이젠 우리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케인 데이비드호가 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에 상륙한 것을 본 한 목격자의 목격담에서.
 

카리브해와 멕시코(허리케인 길버트호). 1988년 9월 중순 금세기 들어 최고의 맹위를 떨친 허리케인 길버트호가 자메이카, 유카탄 반도, 멕시코 동북부를 1주일 동안 휩쓸어 300명의 사망자와 75만명의 이재민과 100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악성 유행병
 

유럽, 매독. 1500-50년 매독이  신세계 에서 옮겨왔든, 그렇지 않든--이것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다--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 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이 전염병이 처음 발생한 후 15년 내지 20년 동안에 약 1000만명의 호나자가 죽었다.
 

멕시코, 홍역. 1530-45년 스페인의 아즈텍제국 정복 이후 무려 150만명의 인디언들이 홍역에 걸렸다. 외국에서 들어온 이 질병에 대한 면역성이 전혀 없었던 그들은 그 병에 걸리자마자 죽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천연두. 1721--22년 서인도제도에서 들어온 무역선에 의해 전파된 것으로 보이는 천연두에 걸려 보스턴 시민 약 6000명이 고통을 겪다가 그중 약 950명이 죽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지역에서도 같은 시기에 이 병이 유행해 수천명이 죽었다.
 

러시아, 맥각 중독. 1722년 신경계에 감염되는 이 병은 썩어가는 호밀 낟알에서 번식하는 진균류에 의해서 발생한다. 진균류에 감염된 호밀로 빵을 만들어 먹게 되면, 격렬한 경련과 환각 및 격심한 통증을 일으키면서 죽어가게 된다. 1722년에는 약 2만명의 러시아인들이 맥각 중독으로 죽었는데, 그중에는 표트르대제의 군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표트르대제는 서방 세계 침공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뉴잉글랜드, 디프테리아. 1735--40년 인후 부위에 심한 감염을 일으키는 열병인 디프테리아는 5년에 걸쳐 어마어마한 수의 뉴잉글랜드지방 어린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예컨대, 뉴햄프셔주의 여러 도시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10세 이하 어린이들의 사망률은 약 80%에 달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황열병. 1793년 17세기부터 되풀이된  신세계 의 재앙 황열병은 1793년 이곳에서 다시 발생하여 무려 5000명의 필라델피아 사람을 죽게 했다.
 

러시아, 발진티푸스. 1812년 8월 감염된 이를 통해 전염되는 발진티푸스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출정 기간 중 많은 프랑스군을 죽게 했다. 약 10만명으로 편성된 한 부대에서, 불과 1주일 사이에 약 1만명이 이 병으로 죽었다. 또 어떤 부대는 병사의 수가 30만이었는데, 발진티푸스로 70%를 잃었다.
 

파지제도, 홍역. 187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를 방문한 한 족장의 아들이 처음으로 홍역에 걸려 돌아왔다. 면역성이 없는 이곳 주민들 거의 모두가 이 병에 걸렸고, 그중 20%가 사망했다.

  

이 도시를 휩쓴 재난의 흔적을 필라델피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시골로 피신한 사람은 전 주민의 3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옥들은 반수 이상이 닫혀 있었다. 수백 미터를 걸어가도 사람의 흔적조차 보기 어려웠다. --벤자민 러시 박사, 1793년에 유행한 황열병에 관한 회상
 

테네시주 멤피스, 황열병. 1878년 8--9월 주기적으로 발생하던 황열병이 다시 멤피스시에서 약 5000명의 희생자를 냈다. 멤피스시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그 병을 남부지방의 다른 여러 곳에 전염시켰다. 그리하여 뉴올리언스에서는 4000명이, 미시시피주의 그린빌에서는 2000명이 그리고 미시시피강 유역의 여러 마을에서도 수천명이 이 병에 걸려 쓰러졌다.
 

동유럽, 발진티푸스. 1914--23년 전시에 많이 발생하고 인구가 밀집한 불결한 환경에서 잘 발생하는 발진티푸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첫 해에 세르비아의 한 포로 수용소에서 발생했다. 그 후, 민간인들 사이에도 이 병이 번져 6개월 만에 15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발진티푸스는 마침내 러시아에도 번져, 전쟁과 그 뒤를 이어 일어난 혁명의 와중에서 약 300만이나 되는 사람이 그 병으로 쓰러졌다.
 

구소련, 말라리아. 1923년 혁명의 격동이 낳은 또 하나의 결과로 말라리아는 1800여만명의 구소련 국민을 강타했다. 환자의 40%가 사망한 곳도 몇 군데 있었다
 

미국, 소아마비. 1946년 여름 30년 망에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했는데 23개 주에서 2만 5000여명--주로 어린이들--이 병에 걸려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후 효과적인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되어 소아마비는 더 이상 크게 유행하지 않게 되었다.
 

인도, 말라리아. 1947년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기생충병인 말라리아는, 수세기 전부터 인도에서 유행해왔다. 그렇지만 기록상 말라리아가 가장 심하게 유행했던 해는 무질서했던 인도 독립 원년인 1947년이었다. 그 해 이 병에 걸린 사람의 수는 7500만이나 되었고, 그중 100만명이 사망했다.
 

인도^5,23^파키스탄, 천연두. 1967년 이 해에 마지막으로 크게 유행했던 천연두는 그후 점차 수그러들다 결국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역병는 1967년 250만명을 강타해 그중 5000명이 죽었다.
 

인도 뉴델리, 콜레라. 1988년 여름 장마로 2년 이상 계속되던 인도 북부 지방의 한발이 해소되었지만, 그 때문에 뉴델리의 상수도에는 하수 오물이 흘러 들었다. 한여름이 되자 수천 명의 뉴델리 주민들이 콜레라 또는 위장염에 걸렸고 200여명이 이들 수인성 질환으로 죽었다. 불결한 환경에서 창궐하는 장티푸스와 간염으로 죽는 사람의 수도 늘어날 기세이다.

   

눈. 우박
 

인도 모라다바드. 1888년 4월 20일 역사상 최악의 우박을 동반한 폭풍으로 인도 북부의 이 도시에서 246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소련 로스토프. 1923년 7월 10일 무게가 0.9kg이나 되는 우박이 쏟아져 모스크바 동북부에 위치한 이 농업지대에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여러 마리의 소가 죽었다.
 

인도 하이데라바드. 1933년 3월 10일 이날의 우박으로 200 마리의 소와 1000마리의 양이 죽었고, 인도 중남부의 농경지 약 77평방 킬로미터가 피해를 입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가운데는 무게가 약 3.5kg이나 되는 우박도 섞여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 이라면 기록상 최대의 우박이 될 것이다.
 

뉴욕주 뉴욕. 1947년 12월 26일 1888년 이래 뉴욕시에 불어닥친 이 최악의 눈보라로 맨해튼 거리에 65.5cm의 눈이 쌓였다. 이 눈보라로 동북부 전역에 걸쳐 7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뉴욕주 버펄로. 1977년 1--2월 40일간 눈이 내려 1월 28일에는 버펄로시 일대에 89cm의 눈이 쌓였다. 또 시속 113km의 폭풍이 캐나다로부터 불어와, 더 많은 눈이 쌓이게 되었다. 4일간의 이 폭풍설로 1만 7000명이 고립되었고 29명이 죽음을 당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1978년 2월 6일 32시간 동안에 69cm의 기록적인 대설이 보스턴시에 내렸다. 허리케인의 위력을 지닌 강풍을 동반한 이 폭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매사추세츠주 전역을 휩쓸었다. 그 결과 많은 가옥이 쓰러지고, 수백만 달러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 이 폭풍으로 29명이 사망하고, 1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토네이도(대선풍)
 

미시시피주 내치즈. 1840년 5월 7일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에서 발생한 폭풍 중 최악의 재난을 몰고온 이 죽음의 토네이도는 오전 2시에 내치즈를 강타해 불과 5분 만에 이 도시 주거지역의 상당 부분을 휩쓸고,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 중남부. 1884년 2월 9--19일 공포의 10일 동안, 멕시코 만에서 멀리 일리노이주에 이르는 미국의 심장부를 토네이도가 휩쓸었다. 그 결과 600명이 생명을 잃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1896년 5월 27일 20분간 계속된 이 토네이도는 미국의 대도시 중심부를 강타하여 세인트루이스시와 그 주면에서 최소 300명의 사망자와 약 2500명의 주상자가 발생했고, 약 1200만 달러의 재산 피해가 났다.
 

미국 중서부. 1917년 3월 23--27일 이 일련의 회오리바람은 4일 동안 471km를 휩쓸고 지나가 테네시, 켄터키, 인디애나, 일리노이 등 4개 주에서 211명의 사망자를 냈다.
 

미국 남부. 1932년 5월 21일 토네이도가 지나가면서 6개 주가 쑥밭이 되었다. 특히 피해가 심했던 곳은 앨라배마주 중부였다. 피해지역은 주로 농촌이었으며 사망자 수는 268명, 부상자 수는 최소 1000명, 피해농가는 수백 채에 달했다.
  

무서운 질풍이었습니다. 유리, 먼지, 흙, 나무 토막 할 것 없이 마구 방과 복도로 날아들어 부서지고 온통 난리였습니다...그러다가 지붕이 훌렁 벗겨져 날아가고...비가 쏟아져 우리는 서로 뒤엉켜서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었습니다...그러나 비바람 소리 때문에 아무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을겁니다. --텍사스주 샌앤젤로 레이크뷰 학교 7학년 학생, 1953년 5월 11일 발생한 토네이도에 대한 회상
 

미국 남부. 1936년 4월 2-6일 그것은 남부를 강타한 최악의 폭풍 중 하나였다. 맹렬한 이 토네이도는 아칸소주에서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이르기까지 6개 주를 휩쓸었다. 폭풍으로 인한 400여명의 사망자와 1800명의 부상자 가운데 대다수는 미시시피주 투펠로와 조지아주 게인주빌의 두 소도시에서 발생한 것이었다.(발생 확률이 희박했는데도 불구하고 게인즈빌은 20세기에 들어 세 차례--1903년, 1936년 그리고 1944년--나 살인적인 토네이도의 맹습에 시달렸다.)
 

미국 중남부. 1952년 3월 21--22일 앨라배마주에서 미주리주까지 6개주를 31회나 강타한 폭풍으로 343명의 사망자와 14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미국. 1953년 5--6월 1953년 5,6월에 최악의 토네이도가 미국을 휩쓸었다. 지독한 회오리바람이 서로 멀리 떨어진  미국의 세 지역을 강타했던 것이다. 5월 11일, 단 한 차례의 토네이도로 텍사스주 웨이코는 시내가 쑥밭이 되고 114명이 사망했다. 6월 8일, 토네이도가 6회나 발생하여 미시간주 동남부와 오하이오주 북부를 휩쓸었다.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미시간주 플린트였는데, 사망자만도 113명에 달했다. 6월 9일에는, 오늘날까지 뉴잉글랜드를 강타한 바람 중에서 가장 파괴적이었던 회오리바람이 매사추세츠주 우스터를 강타하여 9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53년 1월 1일에서 6월 1일까지 총 250차례의 토네이도가 미국에서 발행했다.
 

미국 중서부. 1965년 4월 11일 바로 성지 주일인 이날, 40차례의 토네이도와 50차례의 뇌우가 중서부의 5개 주에서 위력을 과시했는데, 그중 인디애나주의 피해가 제일 컸다. 폭풍과 뇌우가 지나가자 271명이 시체로 발견되고, 부상자가 5000명이나 되었으며, 재산 피해액은 2억 달러가 넘었다.

   

화산 폭발
 

이탈리아 나폴리, 베수비오산. 1631년 12월 16일 500여간 활동을 정지하고 있던 베수비오산이 이 날 활동을 시작하여 그 후 한달간이나 계속 분출하였다. 그 결과 마을 6개가 용암에 매몰되고, 또 9개의 마을은 진흙에 뒤덮였으며, 나폴리시를 포함한 광범한 지역에 화산재가 쌓였다. 이 화산 폭발로 약 4000명이 사망했다.
 

자바, 갈룽궁산. 1822년 10월 8일과 12일 오랫동안 활동을 정지하고 있던 이 화산이 2차례 걸쳐 폭발을 했다. 1차 폭발에서 뜨거운 진흙이 주위의 여러 부락으로 급류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4일 후 이 화산의 산정은 폭발로 날아가 버렸고 총 100여개의 부락이 파괴되고 4000명이 사망했다.
 

서인도 제도 세인트빈센트, 수프리에르화산. 1902년 5월 7일 인접한 마르티니크섬에서 펠레산의 폭발로 참화가 발생하기 바로 하루 전, 세인트빈센트섬의 수프리에르화산이 폭발해서 이 섬의 주민 2000명이 죽음을 당했다. 그 외에도 수천명이 연안 바다와 럼술 지하 저장실로 대피했다.
 

알래스카, 캐트마이산.
1912년 6월 6일 북아메리카 최대의 화산폭발은 아무도 살지 않는 알래스카 동부에서 일어났다.
그 때문에,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캐트마이산의 폭발로 수목이 우진 녹색의 계곡 129평방 킬로미터가 달 표면처럼 황량하게 변하고 말았다. 현재 만연의 골짜기(캐트마이 국립공원의 일부)로 불리는 이 지대는 우주 비행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될 정도로 황폐해 있다.
 

인도네시아, 켈루드산. 1919년 5월 이 화산은 자바섬과 수마트라섬 사이에 위치해 있는 작은 섬에 자리잡고 있다. 켈루드산이 1919년 폭발했을 때 켈루드산의 칼데라호에는 펄펄 끓는 물과 용암과 화산재가 뒤섞여 있었다. 이렇게 뒤섞인 화산분출물이 마침내 산허리를 타고 사방으로 쏟아져 내려 인근 마을의 주민 5000여명이 죽었다. 그와 같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1926년에는 분화구 바로 밑에 배수관과 터널을 설치해 용암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파푸아뉴기니, 래밍턴산. 1951년 1월 15일 파푸아뉴기니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높이 1830m의 래밍턴 화산은 화산 활동을 멈춘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러나 1월 15일 우르릉 소리를 내면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래밍턴산은 5일 후 증기와 먼지가 뒤섞인 시뻘건 연기를 내뿜어 무려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구소련 캄차카반도, 베지미아니산. 1956년 3월 30일 아무도 살지 않는 시베리아의 동북부 변방에 위치한 베지미아니산은 화산 활동을 멈춘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1955년 가을 베지미아니산은 화산 활동을 시작하여 1956년 3월 30일에는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 중의 하나가 발생했다.
 

아이슬란드 헤이마에이섬, 헬가펠산. 1973년 1월 23일 아이슬란드의 남해안에 위치한 한 작은 섬의 헬가펠화산이 6개월이나 계속 용암을 분출하면서 7.8평방 킬로미터의 면적이 깊이 61m의 용암에 뒤덮였고 어업 도시 베스트만나에이자의 일부 지역은 깊이 약 6m의 화산재에 묻혀 버렸다.

이 도시에 살던 5500명의 주민은 안전하게 대피했다가 1975년 여름까지 2400명이 돌아와 화산재를 치우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출처] 자연재해 ㅡ 세계사|작성자 자유